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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 그 참을수 없는 가벼움
2008년 03월 23일(일) 18:31
광주의 미래를 담은 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이하 프로젝트)는 지난 2004년 3월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회 출범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보여준 행보는 ‘브레이크 없는 엔진’이었다. 시민들은 자고 일어나면 쏟아지는 장밋빛 청사진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문화를 통한 미래형 도시모델’이라는 생소한 컨셉을 곱씹어 볼 여유를 가질 틈도 없었다.
이 무한질주의 중심에는 문광부 산하 문화중심도시 추진기획단(이하 기획단)이 있었다. 기획단은 지역사회의 여론 수렴은 관심밖이었다. 기획단의 일방주의는 프로젝트의 핵심시설인 아시아 문화전당 설계에서 절정을 이뤘다. ‘광주의 퐁피두센터’룰 꿈꿨던 지역민들의 기대와 달리 지하설계를 당선작으로 내놓았다.
기획단의 일방주의는 곧 제동이 걸렸다. 문광부와 지역사회는 1년여 동안 전당의 기능과 랜드마크를 둘러싸고 지리한 공방전을 벌였다.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당선작을 뽑아놓은 상태에서 이어진 ‘때늦은 논쟁’은 이렇다할 성과 없이 끝났다. 1년이란 귀중한 시간만 소비한 셈이 됐다.
광주의 ‘잃어버린 1년’은 지역민들을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올 초 ‘작은 정부’를 내건 이명박 정부의 방침에 따라 조성위가 폐지될 위기에 몰렸다 극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종합계획 수립이 1년 정도 늦어지면서 정권교체 시점과 맞물려 벌어진 일이다.
최근 문화계를 중심으로 ‘밀어붙이기’의 불온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코드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좌파 문화권력’들의 사퇴를 요구한데 이어 광주에서도 옛 전남도지사 공관을 재미역사화가 김산호씨의 박물관으로 건립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두 사안의 공통점은 적절한 절차와 여론수렴은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역사박물관 건립은 지난해 말 광주시청의 일부 고위간부들에 의해 추진됐다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백지화됐었다. 그런데 최근 이 계획이 다시 등장한 것은 김씨가 광주에 자신의 작품 3천여점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재차 밝혀왔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을 문화콘텐츠로 ‘선점’하고 싶은 광주시청의 간부들이 최근 재유치에 나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역사를 그림으로 볼 수 있는 박물관 건립이 나쁠 건 없다. 문화콘텐츠가 빈약한 광주로서는 역사박물관이 소중한 문화자산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역사화가가 누구인지, 그의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검증없이 무턱대고 박물관 건립을 밀어부친다는 것이다. 역사박물관에 대한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이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순리다. 절차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절차를 무시해서도 안된다. 일찍이 광주시민들이 문화수도 프로젝트에서 체득한 교훈이다.


/박진현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