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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코드 악순환’ 끊을 때
2008년 03월 16일(일) 19:11
“프랑스 외교는 좌(左)도, 우(右)도 아니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프랑스의 국익을 지키는 것이다. …나는 1968년 이후 줄곧 연대의식과 진보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 왔다. 외무장관으로서 프랑스 외교에 이런 가치를 불어 넣겠다.”
지난해 5월 프랑스 외무장관에 발탁된 베르나르 큐슈네르(68)가 르몽드지 1면에 낸 기고문의 일부다.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초대 내각명단을 발표하자 프랑스 매스컴들은 큐슈네르 이야기로 도배를 했다. 중도우파 성향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좌파의 거물 정치인을 측근으로 앉히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였기 때문이다.
청년시절 큐슈네르는 파리 주재 미 대사관 앞에서 붉은 잉크병을 던지며 미 제국주의에 저항한, 좌파 중의 좌파였다. 특히 그는 지난해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인 세골렌 루아얄을 대놓고 지지해 사르코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런데 정작 사르코지의 파격인사에 발끈하고 나선 이들은 좌파진영이었다. 인도주의 의사단체인 ‘국경 없는 의사회’ 창설자인 큐슈네르가 우파 대통령의 품에 안기자 그의 추종자들은 “있을 수 없는 배신”이라며 연일 목소리를 높였다. 좌파진영의 공세가 갈수록 거칠어지자 급기야 큐슈네르는 르몽드지 1면에 ‘나는 왜 장관직을 수락했는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사르코지가 코드로 치자면 ‘극과 극’인 큐슈네르를 외무장관에 발탁한 이유는 무엇일까? 명분 보다 실익을 중시한 실용주의(實用主義) 때문이다. 비록 정치적 이념이 다르더라도 ‘국경을 넘어’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적극적인 외교정책에는 두 사람의 코드가 일치한 것이다. 프랑스의 국익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큐슈네르야 말로 사르코지의 진정한 ‘파트너’였던 셈이다. ‘사르코지-큐슈네르’ 콤비는 오랫동안 소 닭보듯(?)해온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시작으로 국제 외교무대에서 프랑스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참여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렸던 ‘코드인사’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지난 12일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언급하면서 한국 문화예술 위원장 등 문화부 산하 6개 해당 단체장들의 거취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유 장관의 지적대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국정운영에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능력이나 절차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색깔이 틀리다’는 이유로 법적 임기가 보장된 문화계 단체장들을 인위적으로 물갈이하겠다는 것은 독선이나 다름 없다. 더군다나 다양성이 생명인 문화계에서 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것은 또 다른 ‘패거리 주의’일 뿐이다. 이는 출범 초기 부터 이념을 초월한 실용주의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입장과도 정면 배치된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숙적(宿敵)도 끌어안는 사르코지의 실용주의가 새삼 커보이는 요즘이다.


/박진현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