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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 동거하지 못하는 문화
2008년 01월 28일(월) 19:33
남과 북, 수도권과 지역, 영남과 호남, 보수와 진보, 장애와 비장애, 비정규직과 정규직, 한국노동자와 이주노동자, 클래식과 대중가요 등 우리 사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양자가 팽팽히 맞서 공존하고 있다. 둘로 나눠진 듯하면서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남은 남, 북은 북. 보수는 보수, 진보는 진보. 클래식은 클래식, 대중가요는 대중가요. 그렇게 각기 다르게 존재한다.
여기에서 각기 다른 서로의 존재로 가능한 제 3의 문화를 모색하는 공연 하나가 있다. 창작뮤지컬 ‘발레리나를 사랑한 B-boy’가 그것이다.
‘발레리나를 사랑한 B-boy’는 이러한 양분된 사회체제에서 고전무용인 발레와 세계적인 1등 재원으로 등극한 한국의 B-boy들의 브레이크 댄스의 동거를 모색하는 창작뮤지컬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제 3의 길이어야 할 이 뮤지컬은 이 시대의 문화발전으로 과대포장 되면서 전국 순회공연의 영광을 안게 된다. 어딘지 모르게 기형적이지 않은가? 젊은이의 날것으로서의 자유가 비싼 값에 포장돼 팔리고 있는 건 아닐까를 의문해 보게 된다. 이러한 대형 뮤지컬의 성공이란 혹시 성공 가능성 있는 문화를 집중투자하는 기업문화의 일면인 건 아닐까?
문화발전은 사회적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지만 시민사회의 문화적 성숙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문화적 성숙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건 공동체문화이고, 토론하는 문화이다. 그러데 어찌 된 일인지, ‘공동체문화, 토론하는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함께 가자 우리’라고 가슴 뭉클하게 노래 부르던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economy, stupid)”라고 1992년 클린턴은 말했던가? 다들 그렇게 바보가 돼 시장논리에 좌지우지되고 있는가? 돈이 되는 문화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는 건 아닐까?
해결해야 할 우선적인 일로 식량과 안전에만 연연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어쩌면 개인이 자유로운 주체의식을 지녔다는 것을 잃어버린 존재들인 것일까? 그러다 결국 애써 얻은 자신의 자유마저 밧줄로 꽁꽁 묶어 예전에 갇혔던 닭장 안으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태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울타리 안으로 자의적으로 들어가는 이러한 사태는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사회에서 문화가 걸어 가야할 방향성을 잃게 한다. 오직 하나만 있는 문화가 아니다. 문화란 차이의 문화이고, 동거의 문화이고, 융합의 문화이고, 생성의 문화이다. 따로 또 같이 가는, 나날이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는 문화이다. 극단적일만큼 양분되어있는 다양한 계급·계층 간 소통의 터널은 문화가 만든다. 다양한 문화야말로 양분된 집단의 동거를 가능하게 한다.
인정할 수 있는 양자가 존재해야하고, 양자는 서로 인정하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양자 간의 대화를 통해 소통에의 사회구조를 회복해 내는 것이야말로, 삶의 양식으로서 대두되는 문화의 시작이고, 끝이다.
허달용〈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광주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