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 보는 즐거움 ‘책 표지의 세계’
김선두 화백, 이청준 작가 전집 표지 제작
전남도립미술관, 22일까지 원화 전시회
시리즈·전집, 출판사 정체성 표출
‘먼슬리 클래식’ 고전 리커버리해 인기
‘디 에센셜’ 시리즈, 극사실 초상화 화제
‘오늘의 젊은 작가’ 미술가 발굴 선순환
2026년 03월 11일(수) 09:30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선두 화백 전시에서는 이청준 전집에 쓰인 표지 원화를 만날 수 있다.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책 읽기의 즐거움은 여러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내용이겠지만, 책의 표지나 만듦새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가장 마음을 빼앗겼던 표지는 한유주 작가의 ‘계속 읽기:기억하지 못해도’(마티)였다. 넘실대는 청록빛 물 위에 떠 있는 한 권의 책을 포착한 표지와 ‘책읽기’에 관한 내용은 안성맞춤이었다. 표지를 자주 들여다보고, 책을 만져 보려 오랫동안 가방에 넣고 다녔다.

인터넷에서 서핑 중 발견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표지도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출판사에서 끊임없이 출간된 수많은 ‘데미안’ 중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책은 ‘먼슬리 클래식’ 시리즈 중 한권이었다. 표지가 주는 힘이 강렬해 자연스레 ‘다른 시리즈’의 표지를 찾아보며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됐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넘어 책을 보는 즐거움을 찾아 무궁무진한 책 표지의 세계를 들여다 봤다.

◇ 김선두 화백과 이청준 작가의 만남

전남도립미술관(관장 이지호)에서 열리고 있는 김선두 화백의 전시 ‘색의 결, 획의 숨’(22일까지)은 지역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김 화백의 작품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전시다. ‘싱그러운 폭죽’ 등 김 화백의 대표 작품과 신작,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의 대역으로 작업했던 작품 등이 관람객을 맞는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화가의 ‘책 표지’ 작업이 더 없이 반갑다. 자신도 직접 글을 쓰고 여러 권의 책을 냈던 김 화백은 김훈의 ‘남한산성’ 등 책 표지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중에서도 같은 장흥 출신 소설가 이청준(1939~2008)작가 전집(문학과 지성사) 표지가 눈길을 끈다. 생전에 이 작가와 오랜 인연을 이어온 김 화백은 작가 타계 10주기를 맞아 제작된, 총 34권에 이르는 전집의 표지 그림과 제자(題字) 전체를 맡았다. 10년에 걸쳐 전집이 완간된 후 별도의 원화전시회도 열릴 정도로 화제가 됐었다.

전시작은 이청준 작가의 대표작 10점이다. ‘매잡이’나 ‘병신과 머저리’처럼 단박에 책 제목을 연상시킬 수 있는 작품들도 있지만, 작가의 의도를 한번 더 음미하며 소설의 제목과 내용을 떠올려보게 되는 표지화도 있다.

붉은 빛깔이 인상적인 ‘서편제’는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에서 ‘소리의 길’을 만나는 듯하고, 머리에 짐을 인 엄마와 아들의 모습이 작은 점처럼 박혀 있는 ‘눈길’, 가슴 아픈 역사를 오히려 절제된 장면으로 풀어낸 ‘당신들의 천국’ 등도 인장적이다.

“예전에 발간된 전집에는 표지화가 없었지요. 선생의 작품을 읽고 주제를 잘 드러내는 장면을 이미지화하려 노력했습니다. 여러 작품이 묶인 단편집은 더 힘들었지요. ‘선학동 나그네’는 산 뒤로 떨어지는 해의 이미지를 통해 소설 마지막 장면의 애틋함을 담으려했습니다. 산봉우리는 학의 이미지를 형상화했고요. ‘눈길’ 표지를 위해서는 여러 차례 답사를 갔는데 사실적인 느낌 대신 반추상으로 작업했습니다. 종이를 찢어 붙여 콜라주해 색깔이 바랜듯한 느낌을 주고 장지를 두껍게 발라 퇴색함과 따뜻함을 함께 주려했습니다. 엄마와 아들이 함께 걷는 눈길이 왠지 슬프면서도 따뜻한 느낌이길 바랬거든요.”

김 화백은 “특히 직접 쓴 책 제목과 그림을 살짝 겹치게 제작한 디자이너의 작업이 훌륭해 멋진 표지가 탄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출판사의 정체성 ‘시리즈’

각 출판사가 펴내는 시리즈나 전집은 일관된 형식의 표지를 통해 출판사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요즘 단연 눈에 띄는 표지 디자인은 문학동네가 펴내고 있는 ‘먼슬리 클래식’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문학의 깊이에 디자인적 가치를 더하다’를 모토로 매달 한 권의 고전문학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한정판 제작이라 책이 발간되자마자 완판되며 인기를 모으고 있고, 매달 어떤 작품이 출간될 지 독자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출판사측은 시간이 증명해준 고전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 눈에 시선을 끌 수 있도록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

첫 권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부터 ‘오만과 편견’, ‘노인과 바다’, ‘이방인’을 비롯해 3월에 출간된 ‘햄릿’까지 발간된 책 모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리커버를 통해 고전이 새롭게 보였다”, “이 시리즈 전체를 서재에 들이고 싶다”는 독자평이 이어지면서 당초 1년 기획을 넘어 올해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먼슬리 클래식의 디자인은 김이정 디자이너가 총괄하며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작품의 스토리를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마음에 오래남을 어떤 ‘장면’에 집중하며 작업했다.

“커버 디자인은 작품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남는 이미지나 감정에서 출발합니다. 처음에는 정제된 이미지로 보이지만, 작품을 읽은 뒤에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커버를 지향하죠. 독자가 작품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안내하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문학동네가 한달에 한권씩 펴내는 ‘먼슬리 클래식 시리즈’는 독서애호가들의 소장욕을 자극한다. <문학동네 제공>
김 디자이너는 “심플한 포맷을 기본으로 삼고, 여백이 있는 프레임 안에 이미지를 배치한 뒤 하단에 제목을 두는 방식을 설정했는데 먼저 이미지가 읽히고, 이후에 작품 제목을 인식하도록 의도한 구성”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디자인 의도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1월에 출간돼 의미를 더한 ‘데미안’에 잘 나타나 있다.

“밝은 기운이 스며드는 그라데이션 속에서 알이 깨지고, 그 틈을 비집고 나온 새가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방향으로 프레임 밖을 향하도록 구성했습니다. 완전히 벗어난 장면이 아니라, 막 날아오르기 시작한 순간에 머물고 싶었어요. 그 모습은 1월이라는 시간과도 닯아있다고 느꼈습니다. 아직 모든 것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기존의 틀을 벗어나 한 세계를 깨고 나오는 일,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데미안’의 문장을 뒷받침해주듯, 한해를 여는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출발의 신호, 설명보다는 먼저 감정이 닿고 작은 용기를 건네는 이미지가 되길 바랬어요.”

올해부터는 엽서와 책갈피 세트도 함께 제공하고 있으며 12권의 표지를 모아 탁상 달력도 제작했다.

교보문고가 민음사와 공동 기획한 ‘디 에센셜’ 시리즈는 작가의 핵심 작품을 큐레이팅해 한 권으로 엮은 스페셜 에디션이다. 두께가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지만 작가의 대표작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디 에센셜’ 시리즈는 작가의 사진 대신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에 각 작가의 시그니처 컬러를 더한 디자인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정중원 작가의 초상화는 얼핏 보면 사진이라 생각되는 극사실주의 작품으로 작가들의 특징을 잡아냈다. 지금까지 알베르 카뮈(회색), 에밀리 브론테(노랑), 김수영(초록), 카프카(핑크), 헤르만 헤세(주황) 등을 선보였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한국 작가들의 그림이나 사진을 표지화로 쓰며 소설가 뿐나미아 미술인들도 ‘발굴’해왔다. 2013년 조해진의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을 시작으로 최근작인 박서영의 ‘다나’까지 모두 45권이 나온 표지는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 작품을 표지로 쓰고 있다.

안소현 작가의 ‘8.11.S.Z’가 쓰인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 김윤희의 ‘율동하는 풍경’을 표지로 삼은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등이 대표적이다. 표지를 펼치면 작가의 작품 ‘전체’를 살펴볼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인터넷 서점들이 진행하고 있는 ‘단독 리커버’도 눈길을 끈다. 예스 24의 ‘리커버 에디션’ 지난 2017년부터 2025년까지 발간된 262종 중 70%에 달하는 179종이 완판됐다. 리커버 진행 목적과 방향성에 따라 출판사와 협의하여 새로운 표지 디자인을 설정하는데 예스24에서 직접 작가를 제안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완판을 기록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책의 애독자라 밝힌 ‘방구석’ 작가에게 직접 제안해 성사됐다. 힙불교 열풍을 이끈 ‘초역 부처의 말’, ‘텍스트 힙 트렌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집 ‘토마토 컵라면’ 등이 인기를 모았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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