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옛 전남도청 복원 - 임영상 5·18공로자회 광주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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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 오랜만에 5·18민중항쟁 때 시민군 본부였고 최후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구 도청)을 가봤다. 구 도청 복원을 마친 복원추진단이 오는 5월 정식 개관을 앞두고 5·18 관련 단체들을 대상으로 한 ‘시범운영 팸투어’ 일정에 참여하게 됐다.
10여명의 팸투어(사전답사) 참여자는 대부분 5·18 당시 구 도청에서 시민군으로 활약하며 계엄군에 맞섰던 당사자들이어서 그런지, 모두 남다른 감회에 젖어 설렘과 기대 속에 관람했다. 팸투어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도청 본관-도 경찰국 본관-도 경찰국 민원실-도청 회의실·도청 별관-상무관 순으로 1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우리 중 일부는 46년 전 1980년 5월로 시간여행을 하면서 자신들의 활약상이 기록된 사진이나 자료들을 확인하느라 부산했다. 젊은 문화해설사는 5·18 관련 당사자들에게 5·18을 설명해서인지 긴장한 듯 보였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도청 본관 등 건물 곳곳에 총탄 자국이 복원되어 있고 문화해설사가 부연 설명을 곁들임에 따라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1980년 5월로 빠져들게 했다.
그러나 팸투어를 마친 소감은 “아니올시다!”이다. 2년 반에 걸쳐 마무리된 구 도청 복원은 몇 가지 부분 때문에 ‘미완의 복원’이란 꼬리표를 뗄 수 없고 합격점도 줄 수 없다. 물론 복원된 구 도청 건물과 전시콘텐츠가 깔끔하기는 하지만 1980년 당시 시민군이었던 내가 단숨에 감정이입이 안되는 건 왜일까? 마치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왕이 국사를 논의하던 ‘사정전’만 복원하고 다른 부대 건물이나 시설들을 복원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구 도청 복원추진단에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먼저, 도청 담장 근처에 있었던 경계초소를 복원해야 한다. 당시 도청에는 정문 옆과 충장로 입구 회화나무 근처에 시멘트 블록 벽돌로 만들어진 경계초소가 있었다. 나는 1980년 5월 27일 새벽에 회화나무 근처 경계초소에서 보초를 섰었고 계엄군과 대치도 했었다. 고교 친구와 익명의 20대 청년 2명, 그렇게 4명이 각각 실탄 세 발씩 든 탄창을 꽂은 카빈소총을 들고 보초를 섰었다. 내 개인은 물론 5·18항쟁사에도 꼭 있어야 할 경계초소들이 한 곳도 복원되지 않았다는 게 너무 아쉽다. 하물며 몇 년 전까지도 있었던 첨단지구의 영화세트장에도 경계초소가 재현돼 있었는데 말이다.
복원해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도청 건물 앞마당, 경계초소 뒤에 있었던 대형 철제 입간판도 복원되어야 한다. 이 간판은 전남도의 정책을 알리는 대형 철제 홍보 간판이었다. 나는 그날 새벽, 계엄군의 총탄이 철제 간판을 맞고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마치 수류탄이 터지는 줄 알고 놀라기도 했었다.
시민 개방에 앞서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다. 관람객들이 윤상원 열사의 주검이 발견된 곳이라는 동판이 있는 곳에 가면, 그냥 지나치게 해서는 안된다. 관람객들이 회의실에 들어설 때 문화해설사가 묵념을 유도하는 등의 추모행위를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할 게 또 있다. 도청 건물 입구 은행나무 옆에 군 지프가 한 대 주차되어 있었다. 그 옆에다 시민군들과 시위대원들이 타고 다녔던 버스와 트럭 등도 함께 전시해 놓고 안내 설명판도 설치해 두면 훨씬 더 5·18 체험이 실감이 날 것 같다. 아울러, 그날 새벽 시민군들이 광주YMCA강당에서 대기하다 계엄군 진입 소식에 미리 정해놓은 경계 장소로 이동하면서 도청 회의실 지하 식당의 창문을 통해 실탄을 수령했었다. 그곳도 안내 설명판이 설치돼야 할 곳이다.
상무관 관람도 아쉬웠다. 그 당시 상무관에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사망한 시민들의 주검을 안치해 놓았었다. 당시 참배하면서 ‘고향의 봄’이나 ‘애국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었다. 당시처럼 노래는 부르지 않더라도 문화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이들 노래를 은은하게 틀어놓으면 추모 분위기도 조성될 뿐 아니라 시민 개방 효과도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거듭 당부하지만 사전 개방시 지적된 여러 사항을 잘 다듬고 보완해서 5월 정식 개관 때는 모두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10여명의 팸투어(사전답사) 참여자는 대부분 5·18 당시 구 도청에서 시민군으로 활약하며 계엄군에 맞섰던 당사자들이어서 그런지, 모두 남다른 감회에 젖어 설렘과 기대 속에 관람했다. 팸투어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도청 본관-도 경찰국 본관-도 경찰국 민원실-도청 회의실·도청 별관-상무관 순으로 1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우리 중 일부는 46년 전 1980년 5월로 시간여행을 하면서 자신들의 활약상이 기록된 사진이나 자료들을 확인하느라 부산했다. 젊은 문화해설사는 5·18 관련 당사자들에게 5·18을 설명해서인지 긴장한 듯 보였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도청 본관 등 건물 곳곳에 총탄 자국이 복원되어 있고 문화해설사가 부연 설명을 곁들임에 따라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1980년 5월로 빠져들게 했다.
복원해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도청 건물 앞마당, 경계초소 뒤에 있었던 대형 철제 입간판도 복원되어야 한다. 이 간판은 전남도의 정책을 알리는 대형 철제 홍보 간판이었다. 나는 그날 새벽, 계엄군의 총탄이 철제 간판을 맞고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마치 수류탄이 터지는 줄 알고 놀라기도 했었다.
시민 개방에 앞서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다. 관람객들이 윤상원 열사의 주검이 발견된 곳이라는 동판이 있는 곳에 가면, 그냥 지나치게 해서는 안된다. 관람객들이 회의실에 들어설 때 문화해설사가 묵념을 유도하는 등의 추모행위를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할 게 또 있다. 도청 건물 입구 은행나무 옆에 군 지프가 한 대 주차되어 있었다. 그 옆에다 시민군들과 시위대원들이 타고 다녔던 버스와 트럭 등도 함께 전시해 놓고 안내 설명판도 설치해 두면 훨씬 더 5·18 체험이 실감이 날 것 같다. 아울러, 그날 새벽 시민군들이 광주YMCA강당에서 대기하다 계엄군 진입 소식에 미리 정해놓은 경계 장소로 이동하면서 도청 회의실 지하 식당의 창문을 통해 실탄을 수령했었다. 그곳도 안내 설명판이 설치돼야 할 곳이다.
상무관 관람도 아쉬웠다. 그 당시 상무관에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사망한 시민들의 주검을 안치해 놓았었다. 당시 참배하면서 ‘고향의 봄’이나 ‘애국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었다. 당시처럼 노래는 부르지 않더라도 문화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이들 노래를 은은하게 틀어놓으면 추모 분위기도 조성될 뿐 아니라 시민 개방 효과도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거듭 당부하지만 사전 개방시 지적된 여러 사항을 잘 다듬고 보완해서 5월 정식 개관 때는 모두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