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철학, 느린 사유의 미학 - 신우진 광주시민인문학(협) 이사장
2026년 02월 24일(화) 00:20
아침 햇살이 이슬을 털며 골목을 비추기 시작할 때 나는 천천히 길을 걷는다. 목적지도 없고 정해진 루트도 없다. 그날의 바람이 이끄는 방향으로 몸을 맡길 뿐이다. 아무 이유 없이 걷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다가도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나는 깨닫는다. 세상에는 ‘걷는 자에게만 열리는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산책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유이며 감각의 회복이며 존재를 다시 조율하는 예술이다. 우리가 평소 ‘일상’이라 부르는 세계는 대부분 속도 위에 세워져 있다. 목적을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는 시간, 성과를 요구하는 동선, 효율로 측정되는 하루. 그러나 산책은 이 질서에서 벗어난다. 걷는 순간 인간은 다시 세계와 나란히 호흡하기 시작한다.

18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평생을 규칙적인 산책과 함께한 인물로 유명하다. 쾨니히스베르크 시민들은 그의 산책 시간을 기준으로 시계를 맞췄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칸트의 산책은 단순한 생활 습관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성의 긴장을 풀고 감각을 재정렬하는 철학적 실천’이었다. 그는 인간 인식의 조건을 탐구하면서도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결코 잊지 않았다.

이러한 산책의 계보는 근대 도시에서 새로운 형상을 띤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가 말한 ‘플라뇌르’는 목적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산책자였다. 그는 군중 속에 섞이되 동화되지 않고 소비하지 않되 관찰하며 서두르지 않되 예민하게 감각한다. 플라뇌르는 도시가 만들어낸 근대적 인간이자 동시에 그 속도에 저항하는 존재였다. 걷는다는 행위는 이처럼 세계와 거리를 조절하는 하나의 철학적 태도였다.

니체에게 산책은 더욱 절실한 사유의 조건이었다. 그는 평생 심한 두통과 신경쇠약에 시달렸고 책상 앞에서는 오래 사유할 수 없는 몸을 지녔다. 대신 그는 걷는 철학자가 되었다. 스위스 실스마리아의 산길, 이탈리아 해안의 오솔길을 하루 네다섯 시간씩 걸으며 사유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산책은 글쓰기의 윤리이자 생활의 균형이었다. 그는 매일 일정한 거리의 걷기와 달리기를 반복하며 ‘문장을 쓰기 위한 체력’을 관리했다. 그러나 그의 산책은 단순한 자기 관리에 그치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걷는 장면은 세계로부터 살짝 비껴난 존재들의 리듬을 보여준다. 걷는 동안 그들은 말하지 못한 상실을 정리하고 설명할 수 없는 고독을 몸으로 통과한다.

걷는 자는 미세한 세계의 진동에 귀를 기울인다. 자동차 창 너머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 풀잎의 흔들림, 벽돌 틈에 피어난 민들레 한 송이, 담벼락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고양이의 그림자. 산책자는 그 앞에서 멈춰 선다. 서두르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각한다. 그 순간 ‘살아 있음’이라는 감각이 조용히 폐 깊숙이 스며든다.

산책은 시간의 질을 바꾼다. 일상이 미래를 향한 직선이라면 산책은 현재에 머무는 원이다. 테라와다 불교의 걷기 명상이 말하듯 발바닥이 땅에 닿는 매 순간은 ‘지금 여기’로 되돌아오는 행위다. 우리는 그제야 비로소 삶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 속에 머무는 존재’가 된다.

이 느린 걸음은 현대 사회에 대한 가장 조용한 저항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아무 성과도 남기지 않으며 일정표에 기록되지 않는 시간. 그러나 바로 그 무용함 속에서 인간은 회복된다. 걷는다는 것은 선언이다. 나는 기계가 아니며 나의 삶은 효율로만 환산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산책길에서 나는 가끔 오래된 돌담에 손을 얹는다. 거친 표면에는 수십 년의 비와 바람이 축적되어 있다. 그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나의 유한함과 동시에 분명한 존재감을 느낀다. 걷는 자만이 들을 수 있는 침묵의 언어다.

산책은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주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다시 우리 자신에게 데려다놓는 길’이다. 사유가 과열된 시대, 속도가 신앙이 된 세계 속에서,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는 인간을 인간답게 되돌리는 가장 오래된 철학이다. 길 위에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 발견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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