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도 된다는 날, 설날 - 김창균 광주교육청 중등특수교육과장
2026년 02월 11일(수) 00:20
인류가 문명을 이루었다는 첫 증거는 무엇일까.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부러졌다가 붙은 흔적이 있는 선사시대 인류의 다리뼈’라고 말했다. 야생에서 골절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포식자를 피해 달아날 수도 없고 사냥도 할 수 없으며, 결국 다른 짐승의 먹이가 되고 만다. 그런데 부러진 뼈가 붙었다는 것은 그 사람이 회복될 때까지 누군가가 곁에서 돌보았다는 뜻이다. 미드는 바로 그 선택,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수고를 감수한 지점에서 인류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이 말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다친 이의 곁을 지키는 것은 속도를 늦추는 일이고 때로는 멈춰 서는 결단이었다. 결국 문명은 앞서가는 이들의 성과가 아니라, 뒤처진 이를 포기하지 않는 관계의 지속성에서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그때보다 더 문명사회로 나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기술 발전과 성장을 문명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더 빠르고 효율적이며, 더 많은 성취를 이루는 사회를 진보한 사회라 불렀다. 하지만 문명이란 정말 앞서가는 능력에만 있는 것인지, 어쩌면 문명의 진짜 기준은 넘어진 사람 앞에서 오래 걸음을 늦출 수 있는가에 있지 않을까 싶다.

곧 설날이 다가온다. 설날은 흔히 ‘새해의 시작’으로 설명되지만, 이 명절이 품어온 본래의 의미는 출발선이라기보다 귀환에 가깝다. 설날은 잘해온 사람만을 위한 날이 아니었다. 한 해를 버텨낸 사람, 잠시 멈춰 서 있던 사람, 길을 돌아온 사람까지 다시 불러들이는 시간이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이 되었든 돌아와도 된다는 사회적 허락의 날이었다.

이 지점에서 이청준의 소설 ‘눈길’이 떠오른다. 도시 생활에 쫓기듯 살다가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아들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눈 쌓인 산길을 걸어 타지로 가는 아들을 배웅한다. 그리고 함께 걸었던 눈길의 흔적을 되짚으며 홀로 되돌아온다. 아들에게 눈길은 지난날의 쓰라림이었지만 어머니께는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과 희생을 담은 시간이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회고를 듣고 자신이 얼마나 오래 누군가의 기다림 위에서 살아왔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이 장면은 동행의 남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함께 걷지 않더라도 떠난 이후의 시간을 감당하는 선택, 말없이 남아 있는 그 시간이야말로 한 사람의 삶을 떠받쳐 온 토대였음을 소설은 조용히 드러낸다. 이것은 미드의 말과도 맞닿아 있다. 문명은 늘 나란히 걷는 데서만 작동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보내고, 기다리고, 돌아올 자리를 남겨 두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설날 풍경은 이전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 명절의 형식은 간소해졌고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때로 안부는 곧 질문이 되고 질문은 비교로 이어진다. “요즘 뭐 하니?”라는 말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니?”로 들린다. 아직 붙지 않은 다리를 가진 사람 앞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이유를 묻고 결과를 요구한다. 회복 중인 상대에게 필요한 것은 종용이나 재촉보다는 기다림인데, 사회는 그 겨를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태도가 어느새 성과와 속도의 언어에 더 익숙해졌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설날은 여전히 요긴하다. 가장 앞서 달린 사람을 축하하는 날이면서도 미처 도착하지 않은 이의 자리도 남겨 두는 날이기 때문이다. 회복에 필요한 시간을 인정하고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시간일 때 설날은 문명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가 된다.

마거릿 미드가 말한 다리뼈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우리의 선택 속에서 새로이 만들어진다. 중요한 것은 회복이 가능할 때까지 관계를 놓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문명은 앞서가는 능력이 아니라 타인의 얼굴 앞에서 걸음을 멈출 수 있는 선택에서 시작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번 설날, 우리는 누구를 떠올릴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곁에 서는 것이고 돌아올 이의 자리를 남겨 두는 일이다. 속도는 기록되지만 기다림은 기억으로 남는다. 누구에게 “괜찮다, 돌아와도 된다.”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설날이 그런 말을 건넬 수 있는 시간이라면 아직 문명을 잃지 않은 사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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