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이성 -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지음, 이승원 옮김
2026년 01월 30일(금) 09:20
현금 살포, 선심성 정책, 극단적 민족주의와 혐오의 정치…. 오늘날 정치권에서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상대를 공격하는 가장 손쉬운 낙인이 됐다. 어떤 정책은 포퓰리즘으로 불리고, 비슷한 정책은 국민을 위한 선택으로 치장된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이란 무엇이며, 그와 대비되는 이성적 정치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정치 이론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이성’은 포퓰리즘을 특정 이념이나 정책 노선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포퓰리즘을 정치가 작동하는 하나의 방식, 다시 말해 정치의 논리로 재정의한다.

저자에게 포퓰리즘은 ‘무엇을 주장하는가’보다 ‘어떻게 정치적 주체가 형성되는가’의 문제다. 사회에는 언제나 해결되지 않은 요구들이 흩어져 존재한다. 이 요구들이 제도 안에서 응답받지 못할 때 서로 다른 불만들은 공통의 좌절을 매개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인민’이라는 집합적 주체가 등장한다. 인민은 이미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정치적 대표와 명명, 갈등을 통해 구성되는 결과다.

책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제시되는 ‘비어 있는 기표’는 이러한 과정을 설명한다. 정의, 자유, 민주주의 같은 말은 의미가 고정돼 있지 않기에 서로 다른 요구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저자는 바로 이 불확정성이 정치의 약점이 아니라 힘의 근원이라고 본다.

저자는 포퓰리즘을 제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통념을 비판한다. 합리적 합의와 완전한 대표는 민주주의의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는 결코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되지 않으며, 정치적 대표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갈등과 적대는 민주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성립하는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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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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