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의 지옥고를 넘어 생명 존중의 사랑을 그렸죠”
나주 출신 이상문 작가 6편 중단편 실린 작품집 ‘아수라’ 펴내
“이념 대립보다 인간적 유대와 보은 가치 담아내는 작품 쓸 것”
2026년 01월 27일(화) 19:25
나주 출신 이상문 소설가
불교 용어로 ‘아수라’(阿修羅)라는 말이 있다. “육도 팔부중의 하나로 싸움을 일삼는 나쁜 귀신”을 일컫는다. 흔히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 아귀다툼이 무시로 일어나는 세상을 뜻하기도 한다.

혹자는 오늘의 세상을 ‘아수라와 같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거의 모든 시대가 다툼과 파벌의 시대였다. 인류는 그 아수라와 같은 시간을 헤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상문 작가는 최근 펴낸 소설에서 교만과 시기심으로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벌이는 ‘아수라’의 판을 소설가적 시각으로 형상화했다. 중편소설 ‘아수라’를 비롯해 모두 6편의 중단편이 실린 작품집 ‘아수라’(인북스)는 묵직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기자는 최근 소설집 ‘아수라’를 펴낸 이 작가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나주 출신인 그는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국제PEN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문학상, 영산강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아수라란 교만심과 시기심으로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벌이는 판이지요. 극단적인 이기주의 판가름 속으로 빠져들어 갈수록 혼탁해지면서, 인간성이 매몰된 사회, 그 결과로 돈과 권력만 좆는 군상들을 볼 때, 저는 반세기 전에 들어가 있었던 이국의 전쟁판을 떠올렸습니다. 비용을 대는 나라가 따로 있는 전쟁의 막판(종전)에 벌어지는 아수라 지옥고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인간들을 그렸죠.”

이 작가에 따르면 장편소설만 3편을 발표해 오는 동안 때때로 체증처럼 가슴을 답답하게 한 것들을 풀어낸 작품들이다. 물론 사회현실이 원인이었다.

동국대 재학 중 군 입대 후 ‘월남전’에 파병(1970.3~1972.1)된 그는, 한국 언론 사상 최초 미수교국 ‘공산화 월남’ 특파 취재를 하기도 했다. 그 결과물은 중앙 일간지에 게재됐으며 르포집으로 출간됐다.

이번 작품집은 사회 현실 속의 불만을, 불가의 핵심 사상인 연기법을 서사구조의 근간으로 삼았다. “세상만사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서로 관계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죠”라는 말에서 소설들이 그리고 있는 세상사의 복잡단단한 면들이 가늠되었다. 이 작가는 “벌어진 세상사에서 그 원인과 조건을 기막히게 찾아내 ‘사람을 사람이게 하자’는 것이다”라며 “그것을 선연 찾기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선연 찾기’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이 작가는 평생 ‘인간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삼고 작품에 투영해왔다.

“이국의 전쟁터에 가 있었던 기간에 나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던 죽음의 냄새, 생명이 구차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오는 허무감, 거기서 비롯된 구원(救援)이라 할까? 바로 그런 사고가 매우 소중할 수밖에 없었지요.”

월남전 파병은 그의 삶에 있어, 무엇보다 작가의 삶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의 체험과 사유가 이후 창작을 하는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나도 모르게 완고한 반전쟁주의자가, 확실한 인도주의자가 되어 버렸다”며 “더욱이 우리 민족 간 전쟁의 후유증을 소년기에 겪은 나이 대라서, 그 정도가 더했다”고 말했다.

그의 소설 등단작(1983년) 제목이 ‘사격한 실탄이 낸 흔적’이란 뜻을 가진 ‘탄흔’(彈痕)이고, 사람들이 최고로 많이 읽어준 장편소설(1987년) 제목이 ‘그도 우리도 황인종’이라는 뜻의 ‘황색인’(黃色人)이고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간다. “나를 가리켜 ‘월남전’을 소재로 한 소설을 가장 많이 써낸 작가라고 하는데 다른 소설도 많이 썼다”며 “소설책이 42권에 달한다”고 그는 웃었다.

화제를 돌려 고향 나주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지금도 여름이면 동무들이랑 어울려 나가 강에서 어항들을 놓고, 봄 가을이면 강둑을 걸어 청량정으로, 고개들을 넘어 불회사로 소풍을 다녀온 일이 엊그제 같다”고 회고했다.

이 작가에 따르면 출생지는 나주군이지만 영암군과 경계였다. 민족간 전쟁기에 그 처절함을 직간접적으로 익힐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아울러 그의 작품 곳곳에 나주와 영산강의 자연 환경이 오롯이 투영돼 있을 거였다.

“중학교 때부터는 영산포읍에서 살았어요. 내륙에 부두가 있으면서 그 배경으로 큰 평야를 거느린 고장에서, 치열한 상업 현장과 여유로운 농업 현장을, 그리고 그사이를 흐르는 아흔아홉 구비의 영산강을 함께해온 나의 삶이었죠. 거기에 나주읍의 선비적인 풍모와 정신을 넘보며 살아왔으니, 돌아보면 얼마나 행운인지 절로 감사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의 문학 입문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특별활동 시간에 시를 쓰면서였다.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는 것이다. 중, 고교에 입학하면서는 산문(소설)으로 바꿔 교내의 동인 활동과 함께 광주 시내 고교생들과 동인 활동을 했다.

“문학은, 소설은 내 생명이자 남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생명력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못 쓰게 되면 생명도 다할 것이구요.”

그는 문학에 대한 사뭇 고전적인 정의를 견지하고 있었다. 영산강과 나주로 대변되는 남도의 문학적 DNA 영향이 아닌가 싶었다.

앞으로 계획을 물었더니 “이념 대립보다 인간적 유대와 보은 가치를 담아내는 작품을 쓸 것”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한편 1983년 4월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소설집 ‘살아나는 팔’, ‘영웅의 나라’, ‘숨은그림찾기’ 등과 장편 ‘황색인’(전3권), ‘자유와의 계약’(전2권), ‘남자를 찾다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전2권), ‘오 노’(전3권) 등을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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