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문학의 부활을 기대한다 - 명혜영 광주시민인문학커뮤니티(협) 대표
2026년 01월 22일(목) 00:20
미국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의 강의실에서 더 이상 컴퓨터 언어가 중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순한 교육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 문명의 축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학생들은 코드를 외우는 대신 AI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정확성보다 맥락, 명령보다 의미, 알고리즘보다 언어가 중요해진 자리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다울 수 있는가.”

전통적으로 컴퓨터공학은 엄밀함의 학문이었다. 같은 입력값은 항상 같은 결과를 낳아야 했고 오류는 제거되어야 할 결함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이 공식을 무너뜨린다. AI는 확률적으로 사고하고, 맥락에 따라 다른 응답을 내놓으며, 인간의 언어를 통해 학습하고 반응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입력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세계관과 목적을 가지고 질문하느냐’다. 결국 AI의 성능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사고방식이며, 그 사고는 언어를 통해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인문학은 다시 중심으로 돌아온다. 언어의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 질문을 구성하는 비판적 사고,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성찰하는 윤리적 판단은 모두 인문학이 오래도록 다뤄온 핵심 역량이다.

스탠퍼드와 MIT, 카네기멜런대가 전공을 불문하고 ‘AI 리터러시’를 교양으로 가르치며 AI를 금지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자로 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는 도구이지만 그 도구를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지는 인간의 가치 판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기업 현장 역시 변화를 증명한다. 주니어 엔지니어의 역할이 AI로 대체되면서 단순 코딩 능력은 더 이상 결정적인 경쟁력이 아니다. 대신 요구되는 것은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팀과 소통하는 능력, 기술의 결과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해석하는 능력이다.

이는 기술 이전의 능력이며 인간 고유의 영역에 가깝다. 안드레이 카파시가 “AI 시대 가장 중요한 언어는 영어”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은 단순한 언어 능력을 넘어 ‘사유와 소통의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문학의 부활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을 거부하는 태도가 아니라 기술을 인간의 삶 속에 위치시키는 작업이다. 인문학은 AI의 한계를 폭로하는 학문이 아니라 AI와 함께 살아갈 인간의 조건을 묻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보다 “왜 그것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 결과는 누구에게 어떤 삶을 남기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할수록 인간은 역설적으로 더 인간적인 일을 맡게 된다. 계산하고 반복하는 일, 정답을 빠르게 산출하는 일은 기계가 훨씬 능숙하게 수행한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이해와 해석, 그리고 책임이다. 누군가의 말 뒤에 숨은 맥락을 읽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일들이다.

기술은 결과를 제시할 수 있지만 그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당할 책임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사유가 요구된다. 인문학은 언제나 불확실성 속에서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 왔고 타자의 삶을 상상하며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는 훈련을 제공해 왔다.

그렇기에 나는 말하고 싶다. AI 시대는 인문학의 종말이 아니라 인문학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는 시간이라고. 그리고 이 시험은, 오랫동안 실용성의 이름 아래 침묵을 강요받아 온 인문학에게 오히려 자신의 필연성을 증명할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769008800794717131
프린트 시간 : 2026년 01월 22일 20:4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