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통합, 선거 표심잡기 아닌 지역 생존 차원 논의를
선거 이슈 띄우기 벗어나 진정한 통합논의 필요
타 지자체 지지부진 논의 과정 반면교사 삼아야
2025년 12월 30일(화) 19:50
광주시와 전남도가 행정통합 논의에 다시금 불을 지피고 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통합 논의가 일단 점화했으나, 지역민 사이에서는 진정성을 담보한 ‘백년대계’인지,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표심 잡기용’ 이슈몰이인지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타 광역지자체의 통합 움직임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정치적 셈법을 배제한 ‘속도전’만이 호남권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모두 30일 광주·전남 행정통합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재선 의지를 다지고 있는 강기정 광주시는 그간 고수해 온 ‘선 기능통합, 후 행정통합’ 입장을 선회해 “지금 당장 행정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며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3선 도전에 나선 김영록 전남도 역시 추진기획단 구성을 언급하며 적극적인 태세로 전환했다.

최근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후보군 사이에서도 행정통합은 핵심 화두로 떠오른 상황이다.

민형배·정준호 의원 등 지역 국회의원들과 문인 광주 북구청장 등 기초단체장들까지 가세해 각기 다른 로드맵을 제시하며 통합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는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우선 선거가 코앞에 닥친 시점에서 쏟아지는 통합론은 자칫 ‘선거용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과거 지방선거 때마다 통합 논의는 단골 메뉴로 등장했지만, 선거가 끝나면 단체장의 임기 보장이나 기득권 문제, 시·도 간 이해관계 대립 등으로 인해 유야무야 사라지기 일쑤였다는 점에서다.

이번에도 후보들이 ‘기득권 내려놓기’나 ‘임기 단축’ 등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당선 이후 현실적인 행정 장벽과 정치적 이해득실 앞에서 과연 초심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유권자의 이목을 끌기 위한 ‘아니면 말고 식’의 공약 남발이 통합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문제는 광주와 전남이 내부의 정치적 셈법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타 지자체들은 생존을 위한 몸집 불리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는 통합 추진 공동 선언을 통해 1989년 분리 이후 36년 만의 재결합을 공식화했다. 이들은 인구 360만 명, 지역내총생산 190조 원 규모의 경제권을 구축해 수도권에 대항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세웠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의 접근 방식이다. 청사 위치나 관할 구역 같은 휘발성 강한 쟁점보다는 ‘통합 그 자체’의 당위성에 합의하고 세부 사항은 실무협의체로 넘기는 ‘속도전’을 택했다. 이는 청사 위치 등을 놓고 갈등을 빚다 난항을 겪은 대구·경북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은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정부 또한 대구·경북 통합에 범정부 지원단을 꾸리는 등 메가시티 구축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하기 위해 충청권과 영남권이 각각 거대 광역경제권을 형성하며 미래로 질주하고 있는 반면, 광주와 전남은 각종 현안에 발목이 잡혀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향후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과 대규모 재정 지원에서 호남권만 철저히 소외되어 ‘고립섬’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광주와 전남이 지금이라도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실질적인 통합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선거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공학적 접근에서 벗어나 지방 소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호남권 생존’이라는 대의명분을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행정 구역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것을 넘어 에너지, AI, 바이오 등 미래 산업을 아우르는 경제 공동체로서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시·도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는 현시점에서 통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전략”이라며 “광주와 전남의 리더들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진정한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번 통합 논의 역시 선거철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고 호남의 미래 경쟁력은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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