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일에 멈춰선 시간, 눈물은 멈추지 않아요
[제주항공 참사 1년] 유가족 30명의 고통
“사는게 아닌 그냥 숨 쉬고 있어
날마다 딸 이름 부르며 통곡
아들 휴대전화 요금 내고 보관
돌아가신 부모님께 매일 카톡
진상규명만이 유일한 위로될 것”
2025년 12월 25일(목) 20:10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25일 무안국제공항 로비에 희생자 수와 같은 179개의 여행용 캐리어를 쌓아 만든 추모 작품 ‘캐리어 179: 못다 한 여행의 기록’이 설치돼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희생자 179명의 유가족들에게는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만도 못한, 말 그대로 죽은 것과 같이 보낸 시간이었다.

광주일보는 참사 아픔을 겪은 유가족 30명을 만나 그들이 겪은 1년을 그려봤다. 대다수의 참사 유가족들이 트라우마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인터뷰조차 손사래를 친 가운데 작은 용기를 낸 이들의 목소리다.

광주일보가 만난 참사 유가족 30명은 사고 이후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약에 의존해 잠을 청하거나,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이들에게 슬픔과 고통은 과거가 아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상처다.

지난 24일 무안군 망운면 무안공항에서 만난 유가족 박인욱(69)씨는 참사로 아내와 딸, 사위, 손주 2명 등 5명을 한꺼번에 잃고 지금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박씨는 “지난 1년 동안 공항 쉘터에서 지내오며 미친 놈처럼 살았다”며 “하루 아침에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사람으로서 목청 높이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에서 근무하며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수색에도 투입되면서 참사를 지켜보고, 희생자 수습을 도왔던 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참사 유가족 당사자가 되면서 박씨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한다. 박 씨는 “내가 ‘산 자’라는 사실 자체가 죽은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트라우마로 사회생활 뿐 아니라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이들도 다수였다.

사고로 남편을 잃고 혼자 남은 박귀숙(여·62)씨는 “목포에서 남편과 살았는데,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떠나보낸 남편이 너무 그립다”고 오열했다.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가게도 폐업해 생계도 어려운 상황이다.

박 씨는 친구나 친척도 만나지 않고 인간관계를 거의 끊은 채 지내고 있었다. 신경안정제 약을 먹지 않으면 하루도 버틸 수 없고 주말이면 서울에서 주사를 맞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어디에 말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다른 유가족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참사로 30살 아들을 잃은 이경님(여·65)씨는 “친구도 못 만나고 집안 식구도 못 만난다. 삶이 아니라 그냥 숨 쉬고 있는 것”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남편과 사별한 최말례(여·63)씨는 “남편이 얼마나 무섭고 절박한 마음이었을지 자꾸 떠오른다. 사람들 시선이 두려워 밖으로 다니는 것 자체를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효은(여·52)씨는 “사고 이후 직장도 그만두고 외부 활동을 아예 못 한 채 1년을 보냈다. 큰 딸도 회사에서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더라”며 “1년 내내 잠을 자다 딸 이름을 부르며 깨서 통곡하고 밤을 새우는 날이 반복됐다. 매일 방을 들여다보고, 저녁에 왜 안 들어오냐며 전화를 걸기도 한다”고 눈물을 보였다.

딸과 손주 등 3명을 잃은 심금자(여·70)씨는 지난 여름부터 오른쪽 귀 소리가 안 들리는데 보청기를 착용해도 먹먹하고, 머릿속에선 환청이 들리는 상황이다.

유가족들의 시간은 1년 전 12월 29일에 멈춰 있었다. 심정덕(여·68)씨는 지금도 휴대전화 배경화면에 사별한 남편 사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준화(68)씨는 어머니의 방을 건드리지 않은채 옷장, 화장대, 쓰던 빗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필(71)씨는 고장난 채 수습된 아들의 휴대전화를 고쳐 비밀번호를 풀었고, 한 달에 1만2000원 씩 통신요금을 내면서 보관하고 있다.

부모와 사별한 20대 A씨는 추모 프로필로 바뀐 부모의 카카오톡에 매일같이 메시지를 보낸다. 승진했다는 이야기, 동생과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 보고싶다는 말까지 해 보지만 한없이 기다려도 ‘읽음’ 표시가 뜨질 않는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유가족들은 어떤 말도, 어떤 상담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조금이라도 이들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려면, 결국 온전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만 한다는 마음이었다. A씨는 “유가족에게 가장 큰 위로는 ‘진상규명’이다. 배상금 받아봐야 부모님이 살아 돌아오시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누구 하나 참사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무안=김진아·서민경·양재희·윤준명 기자 jingg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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