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풍경 - 이보람 예향부 부장
2025년 12월 24일(수) 00:20
“거리마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웃으며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아이들도 노인들도 은종을 만들어 거리마다 크게 울리네/…/ 실버벨 실버벨 크리스마스 다가오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가 기다리는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예전처럼 길거리에서 캐럴을 듣기는 힘들지만 곳곳에 반짝이는 LED 조명을 단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다.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종교와 상관없이 서로를 축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언제부터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 트리의 원형이 된 상록수는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 나무였다. 눈이 쌓이고 바람이 매서워도 묵묵히 푸른 빛을 유지하는 나무. 그래서 오래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장식이 아니라 시간을 버텨낸 생명의 상징으로 바라봤다.

이 상록수는 중세 유럽을 거치며 성탄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겨울에도 생명을 잃지 않는 나무에 예수 탄생의 의미가 겹쳐지면서 사람들은 집 안에 나무를 들여와 성탄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 트리는 그렇게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풍경이다.

크리스마스는 연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시간을 돌아본다. 거리마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도 각자의 겨울을 건너온 이들이 있다.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 안에는 긴 계절을 견뎌낸 시간들이 조용히 쌓여 있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 안에는 즐거움 뿐 아니라 “평안이 있기를”, “빛이 함께하기를” 같은 축복의 뜻이 함께 담겨 있다. 크리스마스 인사는 즐거움을 확인하는 말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알아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올 한해도 잘 버텨왔다는 것, 내가 아직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말없이 인정해주는 인사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반짝이는 불빛보다 그 나무가 서 있던 시간을, 크리스마스 인사의 형식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을 한 번쯤 떠올려도 좋겠다. 반짝여도 좋고, 조용해도 좋다. 각자의 속도로 한해를 건너온 모두에게 오늘만큼은 평안이 있기를, 빛이 함께하기를 그리고 즐거운 크리스마스이기를.

/이보람 예향부 부장 bora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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