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3자 합의가 필수적이다 - 박상하 사회경제연구원장
2025년 12월 24일(수) 00:20
정년 연장 논의가 한창이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3개의 중재안을 내놨다. 그러나 기업과 노동자 모두 시큰둥하다. 현재 법정 정년은 60세인데 1안은 2036년, 2안은 2039년, 3안은 2041년까지 점진적으로 65세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놓고 노·사를 설득하는 중이다.

OECD 국가들의 정년은 2024년 기준으로 네덜란드 67세, 캐나다 65세 등으로 평균 약 64.7세다. 미국과 영국은 정년을 아예 폐지했다. 일본은 정년을 법률로 못 박지는 않았으나 2004년에 65세까지 고용 확보 의무를 도입하고 2021년부터는 70세까지 취업 기회 확보 노력 의무를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비추어보면 우리나라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우리의 고령화 속도와 노동시장 환경을 고려하면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한 메뉴였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실기했던 이유는 충분한 준비와 공론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 문제는 단순히 나이를 늦추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임금과 노동시간 그리고 연금과 청년 일자리 등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뒤엉켜있어서 어느 나라든 정치적으로 뜨거운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정년 연장이 연금 개혁과 맞물리면서 전국적인 총파업 시위로 ‘정권의 무덤’이라는 홍역을 치른 바 있다. 2023년 마크롱 정부는 연금 개혁(정년 62→64세)을 통과시키기 위해 표결 직전 야간에 헌법 49.3조를 발동해 기습적으로 강행 처리하였다. 여기엔 20년 후 연금기금 파산을 막기 위한 우려와 경고 때문이었다.

독일은 우리와 같이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생산가능 인구 감소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폭스바겐, 지멘스 등 대기업 경영진은 숙련 인력 확보를 위해 기업과 정부가 비밀 협의로 정년을 67세까지 밀어붙인 경우다. 그래서 노조는 강하게 반발하였으며 통일 이후 동독과 서독의 격차 때문에 어느 쪽에 정년 기준을 맞출지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동독 지역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보이지 않는 보완책을 내놓기도 했다. 예를 들면 동독 주민의 정년 연장에 대한 예외적 조기퇴직 허용을 확대한다거나 산업재해 인정 기준을 완화하는 정책을 병행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대기업의 반대는 적었지만 중소기업이 강하게 반발하였다. 일본 중소기업들은 고령 노동자 임금이 높아 부담이 크다며 정년 연장은 곧 폐업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하였다. 이런 이유로 일본 정부는 정년 연장 대신 ‘계속 고용 의무(연금 수령 나이까지 계속 일자리 제공)’ 형태로 우회적인 정책을 선택하였다. 정치적 반발을 피하고자 정부 발표에서는 정년 연장이 아니라 ‘선택적 계속 고용 확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정년이 늘어난 효과가 있었지만 정년 연장이라는 용어는 숨긴 것이다.

스웨덴은 노조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나라여서 정년 연장 과정에서 노조가 정부의 숨은 파트너 역할을 한 사례다. 노조가 정부보다 먼저 정년을 67세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역제안한 경우다. 이유는 국민연금 제도가 기여형이어서 오래 일할수록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노조와 정부가 밀약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이렇듯 정년 연장은 나라마다 정치·경제는 물론 사회·문화적 환경과 여건에 따라 다양하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의 공약인 65세 정년 연장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정년 연장과 맞물려 있는 노동시간 단축과 주 4.5일제 및 노동시장 유연화, 직무급 도입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우리는 유럽처럼 청년에게 일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고령자가 빨리 은퇴하는 ‘일자리 나누기(Work-Sharing)’문화가 정착된 것도 아니며, 일본처럼 연금 개혁과 계속 고용 의무화를 오래전부터 준비하여 기업에 충격을 완화하고 임금·직무 조정을 기업 자율에 맡겨 우회하는 경험과 노력도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정년 연장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동자 3자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우선 정부는 법과 제도를 설계하며 갈등을 조정하는 재정 보증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연금 개혁과 연동하여 청년 고용 안전장치뿐만 아니라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직무 성과 중심으로 개편하면서 가장 양보하는 처지에 서야한다. 기업으로서는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직무 재설계와 고령자 전용 직무, 저강도 전문직 분리와 청년 채용 병행, 근로 시간 유연화와 선택 근무 확대 등이 요구된다. 노동자는 임금과 직무 변화 수용 및 세대 간 이해 조정 역할과 함께 청년 세대와의 고용 공유가 필요하다. 특히 노조의 기득권 보호 중심 전략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러한 3자의 고민과 합의를 담보하는 것이 온전한 정년 연장의 해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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