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가 시작되자- 박지인 조선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년
2025년 12월 23일(화) 00:20
“이거 제보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일상 속 억울한 일이나 부조리함을 겪었거나, 목격했을 때 한 번쯤 해봤을 말이다.

같은 맥락으로 사용하는 ‘취재가 시작되자’라는 말은 개인이나 기업, 정부 등이 언론의 취재나 보도가 시작되면 그때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거나 대응한다는 뜻이다. 인터넷에서 시작된 유행어로, 사람들은 이를 ‘마법의 단어’로 칭하며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자 잽싸게 태도를 바꾸는 행위를 조롱함과 동시에 언론의 영향력을 나타낸다.

취재가 시작되자 급히 대응하는 사례는 꾸준히 일어난다. 2023년 원주시에서는 수도에서 녹물이 나온다는 민원을 1년이 넘도록 대처하지 않다가 취재가 시작되자 무려 80분 만에 원인을 파악했고, 즉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광주 서구의 한 아파트 앞 인도에 단차가 있어 시민들이 넘어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경계석을 기준으로 왼쪽은 구청 소유의 땅, 오른쪽은 아파트 소유 땅이라는 이유로 서로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취재가 시작되자 구청과 아파트 시공사가 이른 시일 내에 해당 인도를 보수하겠다고 빠르게 답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도록 해결되지 않던 일들에 언론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잘못을 인정하거나 대책을 마련한다. 보통 대중의 관심이 몰릴수록 공권력도 움직일 수밖에 없고 언론을 비롯한 온갖 매체에서 다룬다. 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그 과정에서 이미지 훼손이나 책임, 경제적 손해 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곧장 대처하는 게 가장 피해가 적다고 생각할 것이다.

온갖 사건·사고를 쉬쉬하며 감추다가 언론의 취재로 공론화되면서 일어나는 파장은 두려워한다. 애초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몇 날 며칠을 피켓 들고 시위하는 시민의 외침보다 보도 한 줄을 더 무서워하는 것이다. 지난 4월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언론보도가 증가하자 중대재해 발생이 줄었다”라고 밝히며 이에 대한 상관관계를 증명하기도 했다.

특히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활발한 SNS를 통해 퍼진 시민들이 제보 영상이 언론사의 취재 자료로 쓰이곤 한다. 사실 학보사 기자로서 종종 학생들의 제보로 우선 관계자를 취재하다 보면 “규정상 안 된다”거나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민원과 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답이 이렇게 돌아오면 모든 의지를 잃곤 한다. 사실상 해결하려는 노력은 없고 모든 민원에 정해진 답처럼 남발하기 때문이다. 공론화가 되면 왜 곧장 규정이 바뀌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곤 한다. 또한 사건을 크게 키우지 말라는 의미의 은근한 압박도 많다. 그러나 되려 압박은 곧 언론의 힘을 증명한다.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까지 어떻게든 숨기려는 행위가 비겁하고 괘씸하다. 그렇지만 취재가 시작돼도 꿈쩍도 안 한다면 그것대로 무서운 일일 것이다. 과거에 비해 신문의 힘이 약해졌다지만 외부에서 압박받을 정도로 사회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다. 여러 언론사에서는 ‘취재가 시작되자’를 주로 후속기사를 보도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채널A의 경우 지난해 ‘취재가 시작되자’ 홈페이지를 개설해 사건과 사연을 직접 제보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오픈하기도 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은 가끔 공권력보다 언론을 더 신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단어가 무섭거나 부끄러운 기업이나 기관이라면, 가급적 취재가 시작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업무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작동시켜야 한다. 보도에 나가면 일단 사과하고 시정하는 척하고 제도 개선이 아닌 ‘전시 행정’만 지속한다면 국민의 불신과 불만은 해결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론의 힘이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일시적인 사건 해결보다 근본적인 시스템이 왜 바뀌지 않는 것인지 집요하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766416800793587206
프린트 시간 : 2025년 12월 23일 04:4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