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A+ 를 줘도 될까 - 김진균 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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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맡고 있는 기초교양 수업은, 학생들이 미리 질문을 제출하고 발표자가 수업 시간에 그 질문에 대해 답변하면 교수자가 개입하여 바로잡고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수업 모델이다. 이번 학기에는 이 수업에서 내가 가르치고 있는 게 인간인지 AI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부쩍 하게 될 만큼 질문과 답변을 AI로 작성하고 검토도 없이 제출한 듯한 정황들과 마주치고 있다.
문장은 세련되고 어법에 어긋나는 것이 없는데 그럴수록 내용은 엉뚱한 경우가 많다. 질문이 의아해서 의도를 물어보면 설명하지 못하고 답변이 황당해서 근거를 물어보면 또 얼버무린다. 학기 초에는 강의와 거의 무관한 내용이 세련된 문장으로 표현되더니 학기 말이 될수록 수업의 핵심 개념과 이전에 내가 설명했던 내용들이 섞여서 거론된다. AI 프로그램에 수업 관련 프로젝트를 하나 만들어서 강의 자료와 피드백을 누적시키며 학습시킨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하고 있다. 이런 정성을 쏟은 학생 말고 그 AI에게 학점을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그렇다고 짐작만으로 학생들을 지적할 수도 없다. 여러 대학의 초대형 강의에서 AI를 사용하는 부정행위가 적발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구시대적으로 한두 번의 시험과 과제만으로 진행하는 성과 중심 평가를 이제는 단계별 과정 중심 평가로 바꿔야 한다거나, 강의실에서 인공지능을 규제할 게 아니라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학습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등의 비판적 대안이 나오고 있고 나름 그럴듯한 의견들이지만, 강의의 대형화와 온라인화를 추구하는 작금의 대학 실태에서 효능이 있을 것인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내가 주목한 보도 내용은 학생들의 자수를 요구한다는 대목이었다. 대개 생성형 AI를 활용한 부정행위의 증거가 명확하게 드러나기는 쉽지 않다. 대학에서는 AI를 활용해서 AI 활용을 잡아내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지만 잡는 AI가 잡히는 AI보다 뛰어나다는 보장이 없으니 시스템 적발에 오류가 많고 미국에서는 소송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소식도 있다.
사실 이 상황에 대해 비판적 대안을 내놓는 교수 연구자들도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학생들의 리포트를 일일이 읽고 코멘트해줄 시간을 아껴서 취업과 승진에 필요한 논문을 한 줄이라도 더 써야 한다는 압박감, 수많은 학회지들에서 오는 피어리뷰 요청에 응하느라 내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초조함, 논문 하나 더 내기 위해 읽고 요약해야 할 자료가 끝없이 쌓여가는 피로감 속에서 생성형 인공지능 사용의 유혹을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학점 경쟁에 포섭된 학생들 중의 누군가는 더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며, 논문 계량 평가의 노예가 된 교수 연구자들 중의 누군가도 논문 양산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함께 준수할 규칙을 만드는 일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선을 넘는 비윤리적 행위를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것은 윤리적 제도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무능을 분식하는 일이다. 현재 대학 실태를 용인한 채 가이드라인만 떠들 것이 아니라 비윤리적 행위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도록 대학 실태를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생성형 AI가 비윤리적으로 활용되게 만든 조건은 대학이 조직적으로 추구해온 방향에서 조성된 것이다. 수백 명이 함께 듣는 강의에서는 사유하지 않아도 성적을 받을 수 있고, 허술한 강의 잘만 찾아다니면 이해하지 않아도 졸업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의심을 품고 질문하려 들면 인공지능 요약 노트를 사용하는 학생들로부터 잡음이 들어간다고 비난받는 조건을 대학이 먼저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런 교육 현장에서 시청자를 자처하는 학생들의 손에 쥐어진 생성형 AI는 사유와 이해와 질문을 단숨에 우회하는 도구로 가장 적합한 것이다.
악착같이 줄 세우고 자잘한 차이로 나눠 학점을 부여하면서도, 따로 우리 교육 소비자들께서 불편하신 게 없으신지 심기를 살피며 최소 비용에 최대 효과를 추구하던 시점에서 수렁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논문 계량 평가의 노예들만 남겨두려는 인사 제도를 도입한 시점에서 수렁을 피할 길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초대형 강의와 온라인 교육이 도입되면서 높은 사유와 깊은 통찰이 납작하게 수렁에 잠겨 들어갔다. 겨우 남았던 땅조차 이제 AI의 홍수에 휩쓸리고 있다. 경쟁 없는 작은 강의실에서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적은 수의 학생들만이 AI의 파도를 즐기며 높은 사유와 깊은 통찰의 학문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주목한 보도 내용은 학생들의 자수를 요구한다는 대목이었다. 대개 생성형 AI를 활용한 부정행위의 증거가 명확하게 드러나기는 쉽지 않다. 대학에서는 AI를 활용해서 AI 활용을 잡아내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지만 잡는 AI가 잡히는 AI보다 뛰어나다는 보장이 없으니 시스템 적발에 오류가 많고 미국에서는 소송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소식도 있다.
사실 이 상황에 대해 비판적 대안을 내놓는 교수 연구자들도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학생들의 리포트를 일일이 읽고 코멘트해줄 시간을 아껴서 취업과 승진에 필요한 논문을 한 줄이라도 더 써야 한다는 압박감, 수많은 학회지들에서 오는 피어리뷰 요청에 응하느라 내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초조함, 논문 하나 더 내기 위해 읽고 요약해야 할 자료가 끝없이 쌓여가는 피로감 속에서 생성형 인공지능 사용의 유혹을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학점 경쟁에 포섭된 학생들 중의 누군가는 더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며, 논문 계량 평가의 노예가 된 교수 연구자들 중의 누군가도 논문 양산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함께 준수할 규칙을 만드는 일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선을 넘는 비윤리적 행위를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것은 윤리적 제도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무능을 분식하는 일이다. 현재 대학 실태를 용인한 채 가이드라인만 떠들 것이 아니라 비윤리적 행위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도록 대학 실태를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생성형 AI가 비윤리적으로 활용되게 만든 조건은 대학이 조직적으로 추구해온 방향에서 조성된 것이다. 수백 명이 함께 듣는 강의에서는 사유하지 않아도 성적을 받을 수 있고, 허술한 강의 잘만 찾아다니면 이해하지 않아도 졸업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의심을 품고 질문하려 들면 인공지능 요약 노트를 사용하는 학생들로부터 잡음이 들어간다고 비난받는 조건을 대학이 먼저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런 교육 현장에서 시청자를 자처하는 학생들의 손에 쥐어진 생성형 AI는 사유와 이해와 질문을 단숨에 우회하는 도구로 가장 적합한 것이다.
악착같이 줄 세우고 자잘한 차이로 나눠 학점을 부여하면서도, 따로 우리 교육 소비자들께서 불편하신 게 없으신지 심기를 살피며 최소 비용에 최대 효과를 추구하던 시점에서 수렁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논문 계량 평가의 노예들만 남겨두려는 인사 제도를 도입한 시점에서 수렁을 피할 길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초대형 강의와 온라인 교육이 도입되면서 높은 사유와 깊은 통찰이 납작하게 수렁에 잠겨 들어갔다. 겨우 남았던 땅조차 이제 AI의 홍수에 휩쓸리고 있다. 경쟁 없는 작은 강의실에서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적은 수의 학생들만이 AI의 파도를 즐기며 높은 사유와 깊은 통찰의 학문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