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자연이 건네는 말’] 승리한 생명은 겨울을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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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을 오르노라면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생명의 움직임을 발견하게 된다. 가지는 메말랐고 바람은 차지만 발 아래 흙에서는 이상하게 따뜻한 기운이 올라온다. 그 온기는 생명의 잔열이다. 초겨울의 숲은 고요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치밀한 생명 활동이 일어나는 계절이다. 나무는 수액을 깊은 뿌리로 돌리고 동물들은 체온과 호흡을 계산하듯 조절한다. 겨울은 멈춤의 계절이 아니라 승리한 생명만이 누릴 수 있는 고도의 생존 전략이 작동하는 시간이다.
대부분 동면을 잠으로 생각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동면은 생리학적 조절 능력을 극한까지 동원해 에너지 소비를 낮추고 조직 손상을 피하는 정밀한 기술이다. 박쥐의 심장 박동은 분당 400회에서 동면기에는 10회 이하로 떨어지고, 개구리는 몸속 포도당 농도를 수십 배 높여 얼음이 세포를 찢지 않도록 대비한다. 도마뱀과 뱀은 햇볕도, 먹이도 없는 겨울을 버티기 위해 스스로의 체온을 거의 정지 상태로 낮춘다. 이 모든 과정은 패배의 체념이 아니라 “나는 이 계절을 버틸 힘이 있다”는 생명의 선언이다.
식물도 다르지 않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지만, 그 사이 뿌리는 더 깊고 넓게 뻗어 내린다. 토양 속 미생물들은 얼음 아래에서 여전히 분해 작업을 이어가고, 겨울철 낙엽층 아래에서는 뿌리균 네트워크가 작동하며 수분과 무기질을 교환한다. 겉으로 멈춘 듯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오히려 더 많은 일이 벌어지는 것, 그것이 겨울 생태의 본질이다.
자연은 이 사실을 통해 우리에게 한 가지 문장을 건넨다. “약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멈출 힘이 있는 존재만이 멈출 수 있다.”
올해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이 문장이 유난히 크게 다가온다. 혼란과 소란이 끊이지 않은 한 해였다. 악다구니를 쓰며 민주주의를 흔들고 시민을 겁주며 헌정을 시험하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분명했다. 소란의 크기가 승리의 크기를 결정하지는 않았다. 결국 이긴 쪽은 흔들리지 않은 시민이었다.
그 사실은 여러 장면에서 반복됐다. 잘못된 권력의 시도를 멈춘 것은 정치 권력이 아니라 광장에 선 시민이었고, 법치주의를 지켜낸 것도 사회 전체의 집단적 분별력이었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한 자들이 떠들썩하게 움직이는 동안 지켜낸 자들은 조용히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올해도 광주가 있었다. 광주는 역사적으로 항상 ‘민주주의의 체온을 지키는 도시’였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를 지키는 일에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던 곳. 올해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렸을 때 광주는 다시 한 번 기준점이 되었다. 전국이 광주를 의식했고, 시민들은 광주의 정신을 선택해 위기를 넘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체온은 여전히 광주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물론 사회 전체가 곧바로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많고, 공동체는 긴장과 피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지켜야 할 것을 지켜냈다는 감각, 이겨냈다는 감각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갈등의 계절을 통과하는 동안 시민은 패배하지 않았다. 오히려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승리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승리자의 휴식, 다시 말해 더 나아가기 위한 재정비의 시간이다.
그 점에서 자연의 겨울은 우리에게 정확한 비유를 건넨다. 동면은 약한 자의 은신이 아니라, 강한 생명만이 선택할 수 있는 준비의 기술이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긴장을 풀지 않지만 방향은 잃지 않는다. 에너지를 흩뜨리지 않고 다음 계절을 향해 모으는 것, 그것이 생명의 방식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다르지 않다. 올해를 돌아보면 흔들렸던 순간보다 지켜낸 순간이 더 많았다. 소란보다 침착함이, 분열보다 판단이, 위협보다 시민의 힘이 더 강했다. 이 모든 것이 승리의 방식이며, 이제 우리는 자연처럼 체계를 다시 정비하고 내년을 위한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지금 겨울 산의 뿌리들은 보이지 않지만 더욱 깊고 넓게 자라고 있다. 얼음 아래 미생물은 묵묵히 일을 이어가고, 동면 중인 생명은 몸을 아끼면서도 다음 계절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 자연의 겨울은 절박함의 시간이 아니라 확신의 계절이다.
우리의 겨울도 그렇다. 우리는 올해 지켜야 할 것을 지켰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순간에 흔들리지 않았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다. 승리한 생명답게 쉬는 것이다. 겨울은 살아남은 생명이 다음 봄을 준비하기 위해 받는 선물이며, 우리는 이미 그 자격이 있다. 자연의 겨울이 그러하듯 우리의 겨울도 다음 계절을 더 크게 살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자연은 이 사실을 통해 우리에게 한 가지 문장을 건넨다. “약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멈출 힘이 있는 존재만이 멈출 수 있다.”
올해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이 문장이 유난히 크게 다가온다. 혼란과 소란이 끊이지 않은 한 해였다. 악다구니를 쓰며 민주주의를 흔들고 시민을 겁주며 헌정을 시험하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분명했다. 소란의 크기가 승리의 크기를 결정하지는 않았다. 결국 이긴 쪽은 흔들리지 않은 시민이었다.
그 사실은 여러 장면에서 반복됐다. 잘못된 권력의 시도를 멈춘 것은 정치 권력이 아니라 광장에 선 시민이었고, 법치주의를 지켜낸 것도 사회 전체의 집단적 분별력이었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한 자들이 떠들썩하게 움직이는 동안 지켜낸 자들은 조용히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올해도 광주가 있었다. 광주는 역사적으로 항상 ‘민주주의의 체온을 지키는 도시’였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를 지키는 일에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던 곳. 올해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렸을 때 광주는 다시 한 번 기준점이 되었다. 전국이 광주를 의식했고, 시민들은 광주의 정신을 선택해 위기를 넘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체온은 여전히 광주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물론 사회 전체가 곧바로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많고, 공동체는 긴장과 피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지켜야 할 것을 지켜냈다는 감각, 이겨냈다는 감각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갈등의 계절을 통과하는 동안 시민은 패배하지 않았다. 오히려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승리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승리자의 휴식, 다시 말해 더 나아가기 위한 재정비의 시간이다.
그 점에서 자연의 겨울은 우리에게 정확한 비유를 건넨다. 동면은 약한 자의 은신이 아니라, 강한 생명만이 선택할 수 있는 준비의 기술이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긴장을 풀지 않지만 방향은 잃지 않는다. 에너지를 흩뜨리지 않고 다음 계절을 향해 모으는 것, 그것이 생명의 방식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다르지 않다. 올해를 돌아보면 흔들렸던 순간보다 지켜낸 순간이 더 많았다. 소란보다 침착함이, 분열보다 판단이, 위협보다 시민의 힘이 더 강했다. 이 모든 것이 승리의 방식이며, 이제 우리는 자연처럼 체계를 다시 정비하고 내년을 위한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지금 겨울 산의 뿌리들은 보이지 않지만 더욱 깊고 넓게 자라고 있다. 얼음 아래 미생물은 묵묵히 일을 이어가고, 동면 중인 생명은 몸을 아끼면서도 다음 계절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 자연의 겨울은 절박함의 시간이 아니라 확신의 계절이다.
우리의 겨울도 그렇다. 우리는 올해 지켜야 할 것을 지켰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순간에 흔들리지 않았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다. 승리한 생명답게 쉬는 것이다. 겨울은 살아남은 생명이 다음 봄을 준비하기 위해 받는 선물이며, 우리는 이미 그 자격이 있다. 자연의 겨울이 그러하듯 우리의 겨울도 다음 계절을 더 크게 살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