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자료 10만점 - 박성천 문화부장
2025년 12월 08일(월) 00:20
우리 역사에서 호남은 시대 고비마다 고난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말로 호남의 정신을 강조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독립군 가운데는 호남인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러한 예는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의미를 뒷받침한다.

호남의 역할은 군사적인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비옥한 평야와 천혜의 해안을 거느린 호남은 식량과 수산물의 보고였다. 백성을 먹여 살리는 ‘곳간’으로서의 중요 역할을 수행한 것과 아울러 수준 높은 학문과 문화를 꽃피웠다. 범박하게 표현하면 호남은 예향이자 학문의 고장이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은 호남의 학문적 역량과 전통적 가치를 구현하는 본산이다. 2018년 개원한 한국학호남진흥원이 최근 한국학 자료 10만점 수집을 달성했다. 올해까지 멸실, 훼손 위기에 놓인 자료 1만4455점을 포함하면 누적 자료가 총 10만1696점에 이른다. 한국학 자료 10만점은 전국 국학진흥기관으로는 두 번째로, 그 위상과 성과를 보여준다.

수집한 자료들 중에는 보물급에 해당하는 귀한 자료들도 적지 않다. 1434년 발급한 무과 합격증서인 ‘김수연 왕지’를 비롯해 고봉 기대승과 퇴계 이황의 왕복 편지와 한시를 모은 ‘양선생문답천’, 1389년 무학대사가 간행한 불경사전인 ‘장승법수’, 호남 대표 유학자 수은 강항의 일본 포로 일기인 ‘간양록’ 등이 있다. 또한 한글 조리서인 ‘음식보’는 전라도 식재료와 조리법을 담고 있어 희귀본 자료로 평가된다.

하지만 한국학 연구 중추기관인 한국학호남진흥원이 처한 현실은 무참하다. 독립 청사가 없어 광주 광산구 소촌동 광주시공무원교육원 3·4층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데다 지금의 수장고는 2~3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른다. 홍영기 원장은 “가장 시급한 것은 기관의 정체성에 맞는 전문 수장고를 확보하는 일”이라며 “개원 10주년을 위해 새로운 청사진이 제시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미래 한국학의 지평을 열어가는 핵심 기관이 청사는커녕 제대로 된 수장고 하나 없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 박성천 문화부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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