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2·3 불법계엄 1년
1년 됐지만 진실 규명 진행 중
정치 양극화에 ‘내란 옹호’ 여전
혐오의 고리 끊어내지 않으면
5·18처럼 왜곡·폄훼 재연될 것
2025년 12월 01일(월) 19:45
지난해 12월 3일 새벽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본청 내부로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왼쪽부터), 같은 달 14일 탄핵을 촉구하며 광주시 동구 금남로에 운집한 3만여명의 광주시민, 최근 한덕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신문에 임하고 있는 윤석열 전대통령. <광주일보 자료사진>
국민은 2024년 12월 3일 밤,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또 한 번 구해냈다.

윤석열 전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의사당 앞으로 몰려들었던 수만 명의 시민들은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서며 “계엄 해제”를 외쳤다. 헌정질서 파괴에 맞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불굴의 ‘5·18 정신’이 국민저항의 동력이 됐다. <관련기사 2·3·4·5·16·17면>

불법비상 계엄 1년이 지난 현재 내란 가담자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임박했음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내란이 진행형이다. 19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가해자의 논리’가 2025년 ‘내란 옹호론’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계엄을 “구국의 결단”이나 “불가피한 통치 행위”로 미화하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45년이 지나도록 5·18 민주화운동을 끊임없이 왜곡하고 폄훼해 온 ‘혐오와 배제’의 정치 공학이 12·3 비상계엄 사태라는 새로운 숙주를 만나 부활했음을 알리는 퇴행신호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 찬탈을 위해 광주 시민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도”로 규정해 고립시켰듯, 2024년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여의도 국회를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었다.

주어와 목적어만 바뀌었을 뿐, 집권 세력이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반대 집단을 ‘절멸시켜야 할 적(敵)’으로 상정하고 물리력을 동원한 ‘내란의 메커니즘’은 45년 시차를 두고 판박이처럼 재현됐다. 문제는 이러한 ‘낙인찍기’가 내란이 실패한 현재까지도 특정 지지층 사이에서 강력한 신념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5·18이 역사적 규명이 끝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군 개입설” 등의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것처럼, 12·3 사태 역시 “야당의 입법 독재가 불러온 참사”라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프레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를 지목한다.

헌정 질서를 파괴한 내란조차도 “우리 편이 한 일”이라는 이유로 용인되거나, 심지어 영웅적 행위로 둔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2·3 불법계엄을 옹호하는 세력들이 5·18 왜곡 세력과 지지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왜곡의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지금 이 갈등과 양극화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12·3 사태 또한 ‘제2의 5·18’처럼 끊임없는 왜곡과 폄훼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국민은 1997년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곧이은 사면과 정치적 타협이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받는다’는 교훈을 어떻게 희석했는지 뼈저리게 목격했다. 결국, 미완의 단죄와 어설픈 용서가 결국 2024년 군인들이 다시 국회 유리창을 깨고 진입할 수 있게 만든 심리적 면죄부가 됐다. 내란을 일으켜도 시간이 지나면 정치적으로 복권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우리 사회가 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2·3 사태의 완전한 해결은 법정에서의 형량 선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치권이 상대를 악마화하고 국민을 분열하는 ‘적대적 공생 관계’를 청산하지 않는 한, 내란의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주 4·3 추념식에서 “4·3의 비극과 12·3의 폭거는 적대와 혐오라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났다”고 지적한 바와 같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양극화 해소’와 ‘타협 없는 진실 규명’이다. 내란 가담자들에게는 관용 없는 법의 심판을 내려야 하며, 동시에 정치권은 상대를 파트너로 인정하는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그것만이 45년 전 광주의 피울음을 닦아주고, 1년 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국민에게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위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왜곡을 방치한 사회에는 분열만이 남는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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