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호의 키워드로 읽는 광주·전남 미술사] ‘개성 만점’ 신진작가들 등장 … 일상에 스민 ‘공공미술’
[2000년대 광주 동시대 미술 -일상·생태·대안·내적 심상]
초고속 경제개발·산업화 속 생태환경 문제 대두
미술모임 결성 ‘환경전’ 등 생태 환경 현장 활동
20대 특유 감성으로 설치·행위 등 실험적 작업
낡은 창고·주차장 등서 아트마켓·전시·토론회
독자적 예술세계 구축, 국내외로 활동 영역 확장
허약한 미술시장·의존도 높은 창작 현장 등 그늘도
2025년 11월 26일(수) 07:20
2004년 중흥3동 프로젝트 ‘아홉골 따뜻한 담벼락’. <조인호 대표 제공>
광주·전남의 2000년대 미술은 그야말로 만화방창의 시대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는 들뜸과 의욕으로 시작한 미술 현장도 1990년대의 변화 열기보다는 안정되면서도 역동적인 기운이 만발하는 시기다. 생태환경이나 일상 삶 등 현실적 이슈의 연결, 기성 미술체제 밖의 실험미술 그룹과 대안공간들의 등장, 창작의지 충전소로서 광주비엔날레가 던지는 시대적 화두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20년 국책사업과 연계 프로젝트, 열악한 지역 미술시장과 유통구조 속의 호남 최대 국제아트페어 개장, 빛고을과 광산업을 연계하는 도시정책으로서 미디어아트 육성과 연례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운영, 지역미술 전통을 특화하려는 전남수묵비엔날레의 창설 등등 굵직한 일들이 연이어진다. 작품의 성향도 자연보다는 사회나 개인 상황에 대한 내적 심상 위주로 개별화되는 경향이다. 그러면서도 집단양식이나 단체활동보다는 개개인의 의지와 역량으로 제 길을 열어가는 각자도생의 시기이기도 하다.



2005년 첫 환경미술제 중 옥외 전시 부스.
◇생태환경, 삶의 현장으로 간 미술

2000년대 들면서 생태환경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다. 초고속 경제개발과 산업화 과정 속 난개발과 대규모 토목 건설사업의 그늘에 대한 자성의 외침들이었다. 부안 새만금간척사업, 경주 천성산 고속철도 건설공사 등에 따른 자연생태 파괴와 환경재해 우려가 시민운동으로 번졌다. 광주미술계에서도 2001년 ‘환경을 생각하는 미술인 모임’ 결성과 함께 ‘환경, 생명, 공생의 환경미술전’을, 이듬해에는 ‘현장미술 프로젝트 보고서’를, 2003년은 ‘광주천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전시를 비롯 ‘지구의 날’ 행사 참여, 공동걸개그림으로 자연 생태환경 현장 활동을 펼쳤다.

2004년 제5회 광주비엔날레는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이라는 자연생태 환경 이슈를 주제로 삼고 국내외 관련 단체나 작가들의 활동과 작품을 소개하고 전 지구적 담론을 확산시켰다. 2005년과 2006년에는 청년미술인들이 ‘환경미술제’를 열었다. ‘에코토피아를 향하여’ ‘숲으로 가는 소풍’을 주제로 내걸고 롯데화랑과 옥과미술관, 문화공간 서동, 사직공원 팔각정 주변 등지에서 환경생태에 관한 발언들을 펼쳤다. 2009년에는 롯데화랑과 광주천 둔치에서 ‘흐르다! 물, 숲, 바람… 그리고 삶’이라는 주제로 ‘광주천환경미술제’를 열기도 했다. 이는 미술의 사회적 역할로서 일상 삶의 현장 연결로 이어졌다. 앞서 1997년 제2회 광주비엔날레 때 특별전으로 벌린 ‘일상, 기억, 그리고 역사’와 ‘공공미술프로젝트-도시의 꿈’이 그런 관심을 이끌었다. 2002년 첫 결실을 보인 ‘문화동 시화마을 가꾸기’는 조각가 이재길과 주민들이 집집마다 좋아하는 시나 그림을 담벽에 타일벽화와 글씨로 꾸며 산자락 아래 변두리 마을의 골목 풍경을 완전 개조시켰다.

2004년 ‘중흥3동 프로젝트’는 낙후된 재개발 예정 산자락 마을에 미술로 삶의 위로를 건네고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기 위해 추진되었다. 박성현 기획으로 북구문화의집이 함께 마을 사람들의 구술 채록과 자료를 모으고 이 소소한 얘기 꺼리들을 벽화와 설치물, 영상 등으로 담아 후미진 골목 담벼락들을 꾸몄다. 2007년 두 번째 프로젝트 때는 문화관광부의 소외지역 생활환경개선 공공미술사업에 채택되어 마을 타임캡슐 만들기, 빈집 작업방 내기, 중흥동 보물찾기, 꿈틀이 생태공원 등을 진행했다.

양3동에서는 2006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통샘마을 소망의 빛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아시아문화예술아카데미가 주최한 공공미술 조성사업으로 구불구불 좁고 가파른 산비탈 골목길, 굴다리와 시멘트 길바닥, 대문이나 담벽, 빈터 남새밭에 벽화나 지도 그리기, LED 설치조형물 등으로 단장했다.

2008년 제7회 광주비엔날레 때 대인시장에 펼친 ‘복덕방프로젝트’는 일상 삶의 현장에 미술을 접목한 작업이었다. 도심공동화로 쇠락해진 전통시장에 문화예술로 활기를 돋운다는 취지로 시장 폐점포나 가용공간들을 활용해 대대적인 현장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작가들이 시장에 체류하며 현장 작업을 하고, 아트샵을 운영하고, 이벤트를 벌이며 상인들이나 시민들에게 대인시장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켰다. 이 프로젝트는 전통시장 활성화의 선례가 되어 전국에 유사 사업들로 퍼져나갔고, 이후 매년 대인예술시장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제도권 밖 대안미술의 모색

신예들도 1990년대 초의 저항 일탈과는 다른 시각예술의 확장과 대안모색의 모임들을 만들었다. 1999년 말 조선대 미대 재학생들의 ‘그룹 퓨전’(FUSION)은 2000년대 초부터 주목할 만한 신예들의 도전이었다. 기존 미술 규범이나 활동 방식에서 벗어나 장소와 형식을 가리지 않고 ‘단란주점’(2000), ‘주변 혹은 중심’(2001), ‘고아원프로젝트’(2002), ‘현장미술프로젝트전’(2002), ‘도서관미술제’(2003), ‘미술관 캬바레’(2006), 일상의 반전’(2008) 등을 계속 발표했다. 20대 특유의 치기 어린 감각들로 장소와 공간, 현장 환경에 맞춰 시각적 표현과 복합매체들을 꾸몄다.

‘프로젝트그룹 I-Con’도 파격적이고 독특한 작업을 선보인 신예 미술모임이었다. 조선대 미대와 대학원생들이 2004년 그룹을 결성해서 이듬해부터 ‘역사 속의 현장과 인물’(2005), ‘쇼킹쇼킹 백화점에 간 미술가들’, ‘제2회 환경미술제’(이상 2006) 참여에 이어 2006년 파격적인 작품들로 첫 발표전을 열었다. 사진을 주요 매체로 하면서도 설치와 행위 등의 실험적 작업을 병행한 이들 작품은 신진세대다운 신선함과 감각적인 구성, 색다른 이미지 연출로 관심을 끌었다.

한편, 2000년대는 기성문화와는 다른 길의 대안공간들이 부상하는 시기다. 이들은 작품전시뿐만 아닌 담론창출과 출판, 체류형 창작공간, 실험적 전시방식이나 복합적 예술행위 문화 아지트로서 기능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2002년 제4회 광주비엔날레는 새로 일기 시작하는 국내외 각기 다른 성격의 대안공간들을 대거 초대해서 주 전시의 전면에 내세우며 그들 플랫폼을 만들어 주었다.

광주에서는 2008년 봄 박성현 디렉터가 문을 연 ‘제3세대 매개공간 미나리’(약칭 ‘매미’)가 선도했다. 대인시장 건너편 낡은 창고와 주차장에서 ‘아트마켓 매미시장’과 공연 이벤트, 릴레이 초대전을 열거나, 광주미술 현안 진단과 발전방안에 관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박성현은 이를 토대로 2008광주비엔날레 ‘복덕방프로젝트’ 기획을 맡아 여러 실험적 현장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10년 말 대인시장 안으로 공간을 옮겨 기획과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을 계속하다 2012년 초 문을 닫았다.

‘매미’에 이어 2009년 6월에는 조각가 조승기가 대인시장 안에 대안공간 ‘미테’를 열었다. 이어 앞 건물에 카페, 레지던시 공간까지 넓히면서 ‘미테 우그로’로 이름을 바꿔 광주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이자 청년미술의 아지트를 운영했다. 전시와 퍼포먼스, 토론, 출판물 발간, 이벤트, 레지던시 등을 활발히 펼쳐 나갔다. 이외에도 ‘지구발전 오라’, ‘오버랩’, ‘뽕뽕브릿지’(이상 2015), ‘산수싸리’(2019)등이 독자적인 기획과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02년 현장미술프로젝트 전시 중 그룹퓨전의 ‘말자네 포장마차’
◇개성 만발 광주미술과 꽃그늘

2000년대로 들어선 이후 20여 년은 이 지역 미술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빛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원로 중진들이 이끌어가던 과거와 달리 개성 만점의 신진 청년작가들이 미술현장의 활기를 돋우고 흐름을 주도해 가는 형국이다. 그만큼 주목할 만한 신예 청년작가들이 계속 등장하고, 독자적 예술세계를 구축하며 국제적 활동 폭을 넓혀 가는 작가들도 많아지고, 아트페어, 미디어아트페스티벌, 오월미술제 등 미술계 굵직한 행사나 프로젝트도 많다.

얼핏 광주·전남미술의 꽃시절 같아 보이면서도 그러나 그늘도 없지 않다. 창작과 유통의 균형이 무너진 허약한 지역 미술시장과 그에 따른 열악한 창작환경, 열심히는 하지만 크게 치고 나가지 못하는 작품활동들, 관의 지원에 의존도가 높은 미술 현장 등등 안타까움도 많다. 그런 중에도 진중하게 독자적 예술세계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그동안 12회에 걸쳐 광주·전남 미술의 흐름을 간추려 왔으나, 필자의 단견과 제한된 원고 분량으로 인해 일부만을 얕게 다뤄왔음에 너른 양해를 바라오며, 함께 해오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끝>

2016년 대인시장 미테우그로에서 진행된 광주비엔날레 작품포커스.
조인호 전문가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 조선대학교 미술대 회화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한국미술사 전공.

▲ (재)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정책기획실장 역임

▲‘남도미술의 숨결’, ‘광주 현대미술의 현장’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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