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69년 연기 열정 ‘영원한 현역 배우’
국민배우 이순재 별세…향년 91세
‘대발이 아버지’ 국민 캐릭터 사랑
80대에 연극무대 돌아와 연출도
14대 국회의원 한때 정치 활동
‘대발이 아버지’ 국민 캐릭터 사랑
80대에 연극무대 돌아와 연출도
14대 국회의원 한때 정치 활동
![]() 원로배우 이순재가 25일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2021년 연극 ‘리어왕’ 출연 당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무대에서 열정을 보여줬던 배우 이순재가 25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유족 측은 고인이 이날 새벽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까지 연극과 드라마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왔지만 지난해 말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출연 중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하차했고, KBS 연기대상에서는 후배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이후 재활 치료를 이어갔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이순재는 어린 시절 서울로 이주했다. 해방과 한국전쟁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 영화에 매료돼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고학력자로서는 드물게 ‘딴따라’로 폄하되던 연예계에 뛰어든 이례적인 선택으로 회자됐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가 되면서 본격적인 연기 인생이 시작됐다.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 ‘동의보감’, ‘토지’, ‘야인시대’ 등 굵직한 작품에 참여했고, 단역까지 합하면 수백 편에 이르는 방대한 필모그래피를 남겼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아버지’ 역할로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최고 시청률 60%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극에서도 특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1970~1980년대 ‘사모곡’, ‘인목대비’, ‘상노’, ‘풍운’, ‘독립문’ 등에 꾸준히 출연하며 사극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허준’, ‘상도’, ‘이산’에서도 노련한 연기로 작품의 중심을 잡았다는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순재는 고령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며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기존의 근엄한 이미지를 벗고 코믹 연기로 큰 사랑을 받았고,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직진 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연극에서도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200분 가까운 대사량을 완벽히 소화한 ‘리어왕’은 그의 후반기 대표작으로 남았다.
2023년에는 체호프의 ‘갈매기’로 연출에 도전하기도 했다. 지난해 건강 문제로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 전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드라마 ‘개소리’에 출연하는 등 연기의 불꽃을 태웠다. 같은 해 KBS 연기대상에서 최고령 수상자로 이름을 남겼다.
이순재는 잠시 정치권에 몸을 담는 등 ‘외유’를 하기도 했다. 지난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에 출마해 당선되며 의정활동을 펼쳤다.
평생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이순재는 말년에 이르기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지난해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연기가 쉽지 않다. 평생을 했는데도 아직 안 되고, 모자라는 데가 있다”며 “예술이란 영원한 미완성이다. 그래서 나는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한다”고 말했다.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서는 “무대에서 쓰러져서 죽는 게 가장 행복한 순간일 거라고 생각을 한다. 정신없이 뛰었다. 그게 즐거움이고 보람이었으니까”라며 연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소명을 드러낸 바 있다.
또 삶에 대해 “우리가 태어나는 조건은 각자 다르다. 넉넉하게 태어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고. 그러나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의미가 있을 거다. ‘나의 삶의 의미가 뭘까’ 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예술인연합회 협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7일 오전 6시 20분 엄수된다. 장지는 이천 에덴낙원이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무대에서 열정을 보여줬던 배우 이순재가 25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유족 측은 고인이 이날 새벽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까지 연극과 드라마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왔지만 지난해 말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이순재는 어린 시절 서울로 이주했다. 해방과 한국전쟁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 영화에 매료돼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고학력자로서는 드물게 ‘딴따라’로 폄하되던 연예계에 뛰어든 이례적인 선택으로 회자됐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가 되면서 본격적인 연기 인생이 시작됐다.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 ‘동의보감’, ‘토지’, ‘야인시대’ 등 굵직한 작품에 참여했고, 단역까지 합하면 수백 편에 이르는 방대한 필모그래피를 남겼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아버지’ 역할로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최고 시청률 60%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순재는 고령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며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기존의 근엄한 이미지를 벗고 코믹 연기로 큰 사랑을 받았고,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직진 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연극에서도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200분 가까운 대사량을 완벽히 소화한 ‘리어왕’은 그의 후반기 대표작으로 남았다.
2023년에는 체호프의 ‘갈매기’로 연출에 도전하기도 했다. 지난해 건강 문제로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 전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드라마 ‘개소리’에 출연하는 등 연기의 불꽃을 태웠다. 같은 해 KBS 연기대상에서 최고령 수상자로 이름을 남겼다.
이순재는 잠시 정치권에 몸을 담는 등 ‘외유’를 하기도 했다. 지난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에 출마해 당선되며 의정활동을 펼쳤다.
평생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이순재는 말년에 이르기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지난해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연기가 쉽지 않다. 평생을 했는데도 아직 안 되고, 모자라는 데가 있다”며 “예술이란 영원한 미완성이다. 그래서 나는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한다”고 말했다.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서는 “무대에서 쓰러져서 죽는 게 가장 행복한 순간일 거라고 생각을 한다. 정신없이 뛰었다. 그게 즐거움이고 보람이었으니까”라며 연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소명을 드러낸 바 있다.
또 삶에 대해 “우리가 태어나는 조건은 각자 다르다. 넉넉하게 태어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고. 그러나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의미가 있을 거다. ‘나의 삶의 의미가 뭘까’ 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예술인연합회 협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7일 오전 6시 20분 엄수된다. 장지는 이천 에덴낙원이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