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사적지 정체성 사라지나···옛 적십자병원 활용 방안 ‘논란’
광주시 공청회 반응 보니
국가트라우마센터 이미 있는데
트라우마 치유 실증센터 만들고
AI 헬스케어에 창업센터 뒤섞여
일부만 원형보존으로 의미 퇴색
5월단체 “누더기 만들 셈인가”
2025년 11월 19일(수) 19:45
광주시 동구 불로동에 있는 옛 광주적십자병원. 광주시는 오는 2028년까지 이곳을 원형보존 및 리모델링해 시민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광주시가 5·18민주화운동 사적지(제 11호)인 옛 적십자병원에 인공지능(AI) 헬스케어 실증센터, 트라우마 치유 서비스, 창업센터 등을 갖춘 복합 공간으로 활용키로 하면서 사적지 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5·18 당시 부상자 치료, 헌혈 행렬이 이뤄졌던 역사적 상징성을 강조하는 활용 방안이 아니라, 광주 현안 사업을 지원하는 공공 시설 기능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민들 뿐 아니라 5·18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무엇을 만들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광주시는 19일 오후 2시 광주시 서구 치평동 5·18교육관에서 ‘옛 광주적십자병원 보존 및 활용 사업 공청회’를 개최했다.

광주시는 이곳을 역사적 공간으로서 기억 계승 공간으로 만드는 동시에 트라우마 치유 기술을 개발하고 창업 지원을 연계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층에는 ‘헌혈센터’와 휴식을 위한 라운지와 디지털 역사관을 조성해 AR, VR 기술 활용한 5·18역사 체험, 당시 의료 활동 복원 콘텐츠 등을 선보이기로 했다. 응급실, 진료실 일부는 원형을 보존해 당시 의료 활동 현장을 재현하기로 했다.

2층에는 트라우마 치유 실증센터를 설치한다. AI 디지털 기반 치료 기술을 실증하고 기업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시민 대상으로 공공 트라우마 치유 및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헬스케어 분야 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하겠다는 것이 광주시 계획이다.

중환자실 등이 있던 3층에도 트라우마 치유 실증 센터가 마련되며, 정서·트라우마를 연계해 수면 질을 평가하는 프로그램 등이 운영된다고 한다. 3층의 헌혈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은 원형을 보존한다.

광주시는 오는 2028년까지 290억원을 투입해 건물 복원·리모델링 작업을 마치고, 2030년까지 210억원을 들여 트라우마 치유 실증센터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말까지 공청회 결과를 반영해 최종 활용계획을 확정하고, 내년부터 설계공모·설계용역을 시작해 2028년 완공, 2029년 시민 개방하는 일정이다.

하지만 5·18 관계자들을 비롯한 시민들 사이에서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공법단체 5·18부상자회 회원은 공청회 자리에서 “5·18 사적지로 보전하는 적십자병원과 광주시가 추진하는 AI 헬스케어, 청년 창업과 무슨 연관성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미 서구 화정동에 들어선 국가 트라우마 센터외에 적십자병원에 트라우마 관련 시설이 또 들어서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게 제시되지 못했다.

오창규 박승희열사정신계승기념사업회 회장은 “옛 광주적십자병원의 다소 일부 구간만 원형 보존할 뿐 그 외 공간에 관련성도 없는 활용책을 제안해 원형 보존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말했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는 “사라질 위기에 있던 공간을 매입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사적지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고 활용 방안을 찾는다는 구상조차 없이 예산을 따와서 사업을 여는 데만 치중하는 모양새가 됐다”며 “시민들에게 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면, 주먹구구로 급하게 처리할 것이 아니라 논의를 멈추고 숨고르기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1층 공간을 통해 적십자병원의 역사적 상징성은 충분히 보존시키고자 했다”며 “주변 사적지와 콘텐츠가 중복되지 않으면서 시민과 친화적이고, 미래 활용도까지 고려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결과”라고 말했다.

옛 광주 적십자병원은 5·18 당시 부상자 치료와 자발적 헌혈이 이뤄진 상징적인 5·18사적지인 옛 적십자 병원은 서남대가 매입해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만드려다 파산해 2014년부터 폐건물로 방치돼 왔으며, 민간매입에 따른 훼손 우려를 들어 광주시가 지난 2020년 7월 매입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763549100792224112
프린트 시간 : 2025년 11월 19일 23:3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