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갯벌, 소금이 만들어낸 순환의 풍경들
태평염전 ‘소금 같은 예술’ 프로젝트
박희자·전희경 작가 ‘개펄의 속삭임’
12월 4일까지 태평염전 소금박물관
회화·설치 작품 근원·원초적 힘 표현
2025년 11월 10일(월) 19:30
신안 증도 태평염전 소금박물관에서 오는 12월 4일까지 박희자·전희경 작가의 전시 ‘개펄의 속삭임’이 열린다. 전희경 작가의 ‘Mud Drawing’.
햇살이 바다를 비우고 간 자리, 하얀 결정이 남는다. 소금은 바다의 기억이자 태양의 예술이다.

그 기억이 켜켜이 쌓인 신안 증도의 태평염전에서 두 작가가 흙과 빛, 시간의 결을 포착해 한 편의 풍경으로 되돌려준다.

박희자·전희경 작가의 전시 ‘개펄의 속삭임’이 오는 12월 4일까지 태평염전 소금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소금박물관은 1953년 지어진 석조 소금창고를 개조한 공간으로, 현재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염부의 손길과 태양의 시간이 켜켜이 배어 있는 이곳에 들어서면 오래된 벽돌 사이로 은은히 바다 냄새를 느낄 수 있다.

박희자 작가(왼쪽)와 전희경 작가
두 작가는 이 오래된 소금창고를 배경으로 바다와 갯벌, 그리고 소금이 만들어내는 순환의 풍경을 예술의 언어로 번역해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은 전희경 작가의 ‘Mud Drawing’. 가로 8m, 세로 3.5m에 이르는 대형 설치작으로, 길게 잇댄 장지와 캔버스 천 위에 증도의 갯벌 펄을 입혔다. 작품 뒤편에서 비추는 은은한 빛이 작품을 투과하며 마치 해가 떠오르는 이른 새벽의 갯벌을 보는 듯한 풍경을 만든다.

전 작가는 갯벌의 펄을 물에 씻고 여러 차례 체에 걸러 고운 입자만을 걸러 아크릴 미디움과 배합해 물감처럼 사용했다. 강한 해풍이 바닷물 아래 남기는 무늬에서 영감을 얻어 강렬한 브러시 스트로크를 남기고, 길게 재단한 종이들을 종이실로 엮어 매달았다.

그는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갯벌의 움직임이 하나의 큰 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종이를 실로 엮어 그 순환의 감각, 어떤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힘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박희자 ‘신안 칼라 Nr.01, 03-09’
사진을 주요 매체로 삼는 박희자 작가는 19세기 사진 인화 기법인 염화은지 프린팅을 응용해 소금을 예술의 재료로 끌어들였다. 태평염전에서 얻은 소금과 빛에 반응하는 은을 섞어 직접 감광지를 만들고, 염전의 땅을 그대로 인화했다.

바닷물이 증발하며 소금이 결정화되듯 종이 위에서도 빛이 스며드는 순간 염(鹽)의 입자들이 하나의 이미지를 맺는다. 그 과정은 마치 태양과 바다, 그리고 시간이 겹겹이 쌓여 생명을 빚어내는 듯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박 작가는 “증도에서 본 풍경들, 밀려왔다 물러가는 물결과 몸을 휘감는 바람, 곳곳의 갈대들을 시각화하고 싶었다”며 “작업을 마치고 나니 ‘소금이 자신을 낳은 땅을 다시 재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태평염전이 주최하고 보글맨션이 주관하는 ‘소금 같은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태평염전은 2019년부터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국내외 예술가들을 초청해 증도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배경으로 한 전시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몰리 앤더슨 고든, 고사리, 권현아 등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예술가 15명이 증도에 머물며 작품을 선보였고 총 13회의 전시가 열렸다.

프로젝트 기간 작가들은 ‘스믜집’에 머물며 창작에 몰두한다. 스믜집은 1986년 지어진 염전 인부 숙소를 예술가의 작업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스믜집(ㅅ-ㅁ-ㅣ-집)이라는 이름은 삼각 지붕과 수평의 처마, 사각 창틀과 수직 벽선이 어우러진 건축물을 형상화했다.

7년째 이어지는 이 프로젝트는 이제 섬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소금박물관 전시를 넘어, 염전 폐목재와 모니터 다섯 대로 구성한 마두 다스의 설치작 ‘동네 사람들의 수다’, 몰리 앤더슨 고든의 ‘동적 평형’ 등 작품들이 증도 곳곳에 남아 새로운 풍경을 빚어낸다. 섬은 점차 하나의 거대한 예술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신안=글·사진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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