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다문화 아동 키우기 여전히 힘들어요”
광주 서구 ‘다문화가족 자녀 지원사업·진로설계지원 프로그램’ 가보니
베트남·러시아 등 13가족 20명 ‘언어·시선의 장벽’ 호소
가정통신문 이해 못하고 공부 도움 받기 힘든 현실 여전
학교·사회 적응 위해 국가 차원 체계적 지원·인권교육 절실
2025년 11월 09일(일) 20:10
지난 8일 전북 임실치즈테마파크에서 광주서구가족센터가 개최한 ‘2025 다문화가족 자녀 지원사업-진로설계지원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한복을 입고 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광주에서도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유로 겪는 어려움과 불편함이 많아요. 가정통신문은 대부분 한국어라 이해하기 힘들고, 국가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피부색 때문에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도 있고….”

지난 8일 전북 임실치즈테마파크에서 광주서구가족센터가 개최한 ‘2025 다문화가족 자녀 지원사업-진로설계지원 프로그램’에 참가한 다문화가정 학부모들은 한 목소리로 “아직 광주에서 다문화 아동을 키우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은 광주시 서구에 거주하는 4개국(베트남·필리핀·중국·러시아) 13가족 20명의 다문화 가정 자녀가 참가했다. 이들 자녀의 학부모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자신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언어와 시선의 장벽’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까 우려를 안고 있었다.

13년 전 한국에 온 필리핀 출신 정은혜(31)씨는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은 지난 1~4학년까지 친구를 사귀지 못해 많이 외로워했다”며 “아들도 피부색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해 마음이 안좋았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결혼 후 6년 전 아내·딸과 함께 한국에 정착한 최정민(46)씨도 “아이가 다행히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사교성도 뛰어나지만, 외모 탓에 필요 이상으로 주목받는 일이 많아 부모로서 걱정이 된다”며 “주변에서 ‘너는 러시아사람인데 왜 러시아 말을 잘 못하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 무심한 질문이지만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가 크더라”고 말했다.

국가데이터처(KOSIS)에 따르면 광주시 다문화가구 수는 2020년 7742가구에서 2024년 8970가구로 늘었다. 전남 지역은 같은 기간 1만4626가구에서 1만6999가구로 증가했다.

이에 맞춰 국민들의 다문화 수용성은 높아지는 추세다. 여성가족부가 2012년부터 3년 주기로 실시해 온 ‘2024년 국민 다문화수용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의 다문화수용성은 53.38점으로 2021년(52.27점) 대비 1.11점 높아졌다.

반대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 학생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9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학년도 이주배경 고등학생 2만1527명 중 자퇴한 사람은 모두 477명(2.22%)로 집계됐다.

자퇴생 비율은 2020년 1.36%. 2021년 1.93%, 2022년 1.99%로 꾸준히 오르다가 2023년 처음으로 2%대를 돌파했다.

이주배경 학생의 자퇴 사유로는 ‘학교 부적응’이 가장 많았다. 2020년 77명, 2021·2022년 138명, 2023년 206명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퇴서를 냈다.

아이들은 이중 언어로 인해 혼란을 겪는 모습도 보였다. 베트남 국적 어머니를 둔 A(12)군은 “엄마가 한국어가 많이 서툴고, 나는 베트남어를 잘 몰라서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엄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아직 대화도 어렵다”고 말했다.

러시아 출신 어머니 아래서 태어난 B(8)양도 “엄마가 러시아어로 말하는걸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아 한국어로 대답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정통신문이나 교과서 등이 온통 한국어로 돼 있는 등 다문화 학부모를 위한 교육·행정체계의 배려가 없다 보니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도움을 주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최근 학교에서는 주로 모바일 앱(학교종이, 하이클래스 등)을 통해 가정통신문을 전달하고 있으나, 다문화 학부모를 통해 앱을 열어보니 온통 한국어 안내문밖에 볼 수 없었다. 일부 앱에서는 베트남어, 영어 등 언어 설정이 가능했으나, 정작 안내문 내용은 번역해 주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문화 학부모들이 자녀의 숙제나 수업 내용조차 모르는 경우가 다수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17년째 거주하며 광주시 서구에서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방월주(41·중국)씨는 “외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한국어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학부모들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마음과는 달리 자녀 학업 뒷바라지에 소홀한 듯한 기분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다문화 학부모들은 다문화 가정이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만큼 교육 현장에서도 다문화가정 자녀가 자연스럽게 학교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과 인권 교육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B양의 부모인 최씨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차별적 언어와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체감 가능한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과 교육 현장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북 글·사진=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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