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 가득 욕심 담은 다람쥐의 역설 - 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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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산에 올라 도토리를 줍던 나에겐 또 다른 강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도토리를 찾아 이리저리로 뛰어 다니던 다람쥐였다. 하루는 다람쥐를 잡아 보려고 살금살금 다가가 잡았다 놓친 기억이 있다. 볼이 터질 듯 도토리를 가득 채우고 총총거리는 다람쥐는 귀엽기 그지없다. 도토리를 땅에 묻어두고 겨울을 준비하는 준비성도 철저한 것 같다. 그런데 이 작은 동물이 묻어둔 도토리 중 대부분을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당장 겨울을 나기 위해 저장했지만 결국 건망증 덕분에 도토리들은 싹을 틔우고 새로운 숲을 이룬다는 것이다. 다람쥐의 망각이 도토리 나무의 번식을 이루는데 한 몫 하게 된 셈이다.
나는 다람쥐의 이런 역설을 보며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망각의 축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지만 때로는 용감하게 잊어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잊음으로써 오히려 더 큰 생명을 얻는 것이 바로 이 비밀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묻어두고 잊어야 할 것은 바로 과거의 죄와 실수라는 무거운 짐이다. 죄책감은 우리를 한없이 짓누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했을 때 놀라운 약속을 해주셨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8장 12절)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의 기억 목록에서조차 지우셨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다람쥐가 묻은 도토리를 잊어버리듯 하나님이 용서해주신 죄를 우리가 계속해서 되새기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은 ‘용서’라는 선물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정죄감과 부끄러움을 잊어버리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믿음의 용기이다.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길이 될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 ‘망각의 기술’을 실천한 사람이라 하겠다. 그는 과거 바리새인으로서의 영광이나 고통스러웠던 핍박의 기억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려 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갈 것을 결단한 것이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받으려고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장 13~14절)
다람쥐는 묻어둔 도토리에 집착하지 않아야 새로운 먹이를 찾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지나간 성취나 좌절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시선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향해야 마땅하다. 이것은 단순한 건망증이 아닌 더 큰 비전과 성장을 위한 영적인 선택이 된 것이다.
잊어버린 선행이 되돌아오는 은혜의 씨앗이 되는 것처럼 다람쥐의 지혜는 우리가 이웃에게 베푸는 선행의 자세에도 깊은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처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장 3~4절)
사실 나도 가까운 지인의 어려움에 작은 도움을 준 적이 있었는데 정신없이 살다 보니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몇 년 후 내가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분은 과거 나의 도움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나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묻어버리고 잊었던 선행이야말로 세월이 흐른 뒤 나를 지탱해주는 은혜의 씨앗이 되어 돌아왔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다람쥐의 역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듯이 망각은 때로 가장 큰 축복이 된다. 죄책감과 후회를 잊어버릴 때 우리는 자유를 얻는 것이고, 베푼 선행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순수한 사랑을 배우며 하늘의 상급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잊어야 할 것은 과감히 잊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만은 기억하고 굳건히 붙잡아야 한다.
이 ‘망각의 축복’을 통해 우리의 삶은 낡고 병든 과거에 갇히지 않고 오직 미래의 소망을 향해 뻗어나가는 생명력 있는 숲이 될 것이다. 묻어버리고 잊어버린 도토리가 숲을 이루듯 우리의 잊어버림 속에서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고 우리 삶에는 풍성한 은혜의 열매가 맺힐 것이다.
다람쥐가 묻은 도토리를 잊어버리듯 하나님이 용서해주신 죄를 우리가 계속해서 되새기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은 ‘용서’라는 선물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정죄감과 부끄러움을 잊어버리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믿음의 용기이다.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길이 될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 ‘망각의 기술’을 실천한 사람이라 하겠다. 그는 과거 바리새인으로서의 영광이나 고통스러웠던 핍박의 기억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려 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갈 것을 결단한 것이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받으려고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장 13~14절)
다람쥐는 묻어둔 도토리에 집착하지 않아야 새로운 먹이를 찾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지나간 성취나 좌절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시선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향해야 마땅하다. 이것은 단순한 건망증이 아닌 더 큰 비전과 성장을 위한 영적인 선택이 된 것이다.
잊어버린 선행이 되돌아오는 은혜의 씨앗이 되는 것처럼 다람쥐의 지혜는 우리가 이웃에게 베푸는 선행의 자세에도 깊은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처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장 3~4절)
사실 나도 가까운 지인의 어려움에 작은 도움을 준 적이 있었는데 정신없이 살다 보니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몇 년 후 내가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분은 과거 나의 도움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나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묻어버리고 잊었던 선행이야말로 세월이 흐른 뒤 나를 지탱해주는 은혜의 씨앗이 되어 돌아왔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다람쥐의 역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듯이 망각은 때로 가장 큰 축복이 된다. 죄책감과 후회를 잊어버릴 때 우리는 자유를 얻는 것이고, 베푼 선행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순수한 사랑을 배우며 하늘의 상급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잊어야 할 것은 과감히 잊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만은 기억하고 굳건히 붙잡아야 한다.
이 ‘망각의 축복’을 통해 우리의 삶은 낡고 병든 과거에 갇히지 않고 오직 미래의 소망을 향해 뻗어나가는 생명력 있는 숲이 될 것이다. 묻어버리고 잊어버린 도토리가 숲을 이루듯 우리의 잊어버림 속에서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고 우리 삶에는 풍성한 은혜의 열매가 맺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