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총 금관 -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박정희 정권은 1971년 경주를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개발하려고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수립했다. 박 전 대통령이 친필로 ‘慶州開發計劃 作成指針(경주개발계획 작성지침)’이라고 쓸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이 계획에는 1970년 경부고속도로 완공으로 관광기반이 확충됐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미국이 월남전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 월남 파병으로 얻은 외화수입이 감소한데 따른 대안이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은 경주개발계획의 첫 단계로 경주에서 가장 거대한 표형분(瓢形墳,두 개의 봉분이 표주박처럼 붙어 있는 무덤·현 황남대총)을 발굴·복원해 관광객에 공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발굴 조사단장을 맡은 김정기 박사는 우리 기술로 거대한 고분을 발굴한 경험이 없다며 황남대총 발굴을 미루고, 대신 바로 옆에 있는 제155호분(현 천마총)을 택했다. 경험을 쌓기 위한 시험발굴 성격이었다. 뜻밖에 천마총에서는 화려한 장식의 금관과 말다래에 그려진 천마도를 비롯해 1만1526점에 달하는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천마총이라는 명칭은 천마도에서 따왔다. ‘총’(塚)은 무덤 주인을 알 수 없을 때 붙인다.
박정희 대통령은 금관에 집착했다.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할 때 관계자에게 “(고분을 발굴하면) 금관이 나올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애초 발굴대상으로 황남대총을 지목한 것도 왕릉급 규모였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천마총 금관을 청와대로 가져오라고 지시해 실물을 보기도 했다. 전덕재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논문(1973년 천마총 발굴과 박정희 정권의 문화재 정책)에서 ‘통일신라기를 민족 융성기로 인식했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금관은 바로 통일 이전의 신라 역시 융성했고, 자신의 역사관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고 설명한다. 최근 우리 정부가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로 줬다. 대한민국 경제 육성책의 하나로 등장한 천마총 금관의 모형이 관세로 한국을 압박하는 트럼프에게 전달된 운명이 묘하다.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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