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문화공간, 도시의 미래가 되다 (7) 서울예술의 전당 (하)
선율이 물든 공간, 전시에 빠지다
에드바르 뭉크·반 고흐·마르크 샤갈…
매년 평균 두차례 블록버스터전 기획
클래식 마니아들에게 신선한 ‘충격’
4개 전시공간에 다양한 기획전 개최
국내 첫 오랑주리 미술관 컬렉션 공개
청년작가 작품·아트상품 함께 시너지
2025년 10월 22일(수) 19:10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에드바르 뭉크, 반 고흐, 카라바조, 마르크 샤갈….

이름만 들어도 다 알만한 세계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세기의 거장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서울 예술의전당과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외국의 유명 미술관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귀하신 몸’이지만 예술의전당이 특별기획전을 통해 이들의 명작들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을 국내 최고의 클래식 공연장으로만 여겼던 음악 마니아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다.

사실, 예술의전당은 국내 최고의 복합문화예술공간 답게 매년 평균 두차례 블록버스터전을 기획해 미술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등 일부 국공립미술관에서 해외유명작가들의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지만 수년간 꾸준히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건 예술의전당이 거의 유일하다. 여타 미술관에 비해 빼어난 접근성과 장소성을 지닌 덕분에 해외미술관이나 민간 기획사들로 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장소만 빌려주는 대관 전시와는 다르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전을 기획하기 위해 4~5명으로 구성된 전시사업부가 주축이 돼 최소 2년 전부터외국 미술관이나 소장가들과 접촉해 작품을 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가림미술관,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서울서예박물관, 비타민스테이션(예술의전당 로비, 한가람제7전시실) 등 한 공간에 4개의 전시장을 품고 있는 예술의전당만의 강점이다.

뭉크 작 ‘마돈나’
실제로 예술의전당 캘린더에는 1년 365일 빈 일정이 없다고 할 만큼 90% 이상의 전시 가동율을 자랑한다. 이같은 치밀한 기획력과 마케팅은 ‘믿고 보는 전시’로 인식되면서 매번 수십 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5월 관람객 20만 여 명을 동원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을 시작으로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예술가들의 릴레이 전시가 최근까지 이어지면서 미술계의 ‘핫플’로 부상했다.

지난해 누적 관람객 50만 명을 기록한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2024년 11월 29일~2025년 3월16일까지)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국내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반 고흐전은 지난 2007년과 2012년에 이어 12년 만에 개최된 전시로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그의 대표작을 ‘직관’할 수 있는 기회로 주목을 받았다.

예술의전당은 반 고흐전을 앞두고 대대적인 사전예매 마케팅을 펼쳐 30만 장 이상의 티켓을 판매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예술의전당은 고흐의 천재적인 예술성과 비극적인 삶을 스토리텔링해 오프런 신드롬을 일으켰다. 역대 반 고흐전과 차별화 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등이 소장하고 있는 반 고흐의 주요 작품 76점을 연대기 순으로 기획한 점이 주효했다. 또한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초기 드로잉 작품부터 ‘감자 먹는 사람들’ ‘자화상’ ‘씨 뿌리는 사람’ ‘영원의 문에서’ 등 대표작을 비롯해 반 고흐의 최고가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착한 사마리아인’까지 원화로 전시돼 관람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 뒤를 이어 선보인 ‘마르크 샤갈 특별전 : 비욘드 타임’(5월23일~9월21일) 역시 10만 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올 상반기 미술계의 넘버 1을 차지했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의 작품세계를 한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는 세계 최초의 원화 7점 공개로 개막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총 170여 점에 달하는 유화·판화·드로잉을 샤갈의 삶과 예술, 신화와 종교, 사랑과 추억 등 8개의 섹션에 감각적으로 풀어내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 냈다.

올해 예술의전당의 전시라인업은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세잔, 르누아르’(9월20일~2026년 1월25일)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오랑주리 미술관의 컬렉션을 공개하는 이번 전시는 세잔과 르누아르, 그리고 파카소에 이르는 예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하는 대규모 특별전이다. 누적 관람객 50 만 여 명을 기록한 반 고흐전과 샤갈의 열기를 잇기 위해 2년 전부터 프랑스의 국립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르 미술관, 지엔씨 미디어와 협업한 산물이다.

세잔 ‘세잔 부인의 초상’
특히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이번 전시에서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 세잔의 ‘세잔 부인의 초상’ 등의 대표작은 관람객들로부터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인상적인 건, 세잔의 기하학적인 구도와 르누아르의 따뜻한 색채를 나란히 배치한 전시장 연출이다. 마치 두 거장의 대화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듯한 장면으로 컬렉터 폴 기욤의 거실, 오랑주리와 오르세 미술관 등 당시 빈티지 사진과 영상이 어우러져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미술사의 전환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아현 작 ‘심산(深山), Mt. Songni I’
그렇다고 예술의전당이 명품전만 유치하는 건 아니다. 메인 전시장인 한가람미술관이 유명 작가들의 무대라면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서예박물관, 비타민스테이션, 로비 등 다양한 공간에선 젊은 작가들을 위한 기획전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명품 특별전이 열리는 기간에는 전시장 입구나 아트숍 앞에 청년작가들의 작품과 아트상품을 전시해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

‘서리풀 청년작가 특별전-신선한 조각을 호흡하시오’에 출품된 구지은 작 ‘회전하는 공동의 자아’
지난 2020년부터 대중과 청년작가를 연결해주는 청년지원 프로제트 ‘청년 미술상점 아트페어’와 국내외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컨템포러리 아티스트 시리즈, 지역청년들의 개성있는 작품과 에너지를 보여주는 ‘서리풀 청년작가 특별전-신선한 조각을 호흡하시오’가 그 예다. 또한 지난 2023년부터 서울문화재단과 공동으로 기획하고 있는 ‘장애예술기획전’은 사회적 편견을 딛고 모두를 위한 새로운 가치를 정의한 작품을 의미있는 자리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아트숍.
또한 예술의전당은 볼거리가 많은 아트숍을 자랑한다. 일년에 상·하반기로 나눠 열리는 블록버스터전에 맞춰 명화의 이미지를 입힌 수십 여 종의 아트상품을 개발해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르크 샤갈 특별전이 그중의 하나로, 미술관 1층에 꾸며진 아트숍에서는 샤갈의 화려한 색의 향연을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아트상품들이 선보였다. 또한 전시 주제를 반영한 연계 굿즈부터 유명 작가들의 실용성과 디자인을 동시에 고려한 제품들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인 서울 예술의전당 전경. 수준높은 무대는 물론 고흐, 샤갈, 르누아르 등 세계적인 거장의 블록버스터전을 개최해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예술의 전당 이정아 홍보협력과장은 “다른 복합문화기관과 달리 4개의 전시공간을 거느리고 있는 예술의전당은 유아, 어린이, 청소년, 일반인 등 을 대상으로 다양한 주제의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면서 “매머드 블록버스터전이 열리는 기간에는 관람객들에게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등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761127800790844386
프린트 시간 : 2025년 10월 22일 23:4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