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용수·전력 확보 … 기업논리가 대선 공약 뒤집었다
부지 땅값, 광주 평당 200만원·전남 40만원 초기 투자비용 큰 차이
광주, 대선 공약 믿고 안이한 대응…전남은 물밑서 촘촘하게 준비
공공·민간 지분 5 대 5→3 대 7…국책사업의 결정권 기업으로 넘어가
삼성SDS, AI센터 전남 선택 배경
2025년 10월 21일(화) 20:20
하늘에서 본 솔라시도<해남군 제공>
삼성SDS가 21일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의 최종 입지로 전남도 해남·영암 일대 기업도시 ‘솔라시도’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선택은 대통령실의 실용주의 노선과 기업의 수익성 논리가 대선 공약을 뒤엎은 사례로 해석된다. 정부는 두 차례 유찰 끝에 민간 주도성을 강화하며 공공과 민간 지분 비율을 기존 5대5에서 3대7로 전환했고, 이 과정에서 국책사업의 결정권이 사실상 기업에 넘어갔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이었던 ‘광주 국가AI컴퓨팅센터 확충’은 사실상 죄초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남 전력·용수·부지 3박자 충족=삼성SDS 컨소시엄이 이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제출한 사업 제안서에서 전남을 국가AI컴퓨팅센터 후보지로 제시했다. 가장 큰 이유는 부지 매입 비용과 전력 공급량, 냉각수 등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광주시를 비롯한 타 지역의 산업용지 단가가 평당 200만원인 점에 반해, 솔라시도의 평당 단가는 40만~50만원 으로 5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솔라시도는 약 50만평 규모의 ‘데이터센터파크’(가칭) 부지가 조성된 터라 기업들의 빠른 사업 시작이 가능하다. 기업도시 개발 특별법에 따라 조성된 데이터센터파크는 40MW급 데이터센터 25개 동이 입주할 수 있는 규모다. 최대 10조원 이상의 사업도 무리없이 착수할 수 있는 부지다.

풍부한 전력, 산업용수 공급 조건도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양의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이를 식히기 위한 냉각수가 필수적이다. 솔라시도는 대불면을 통해 하루 1만4000t의 산업용수 공급이 가능하다.

이와함께 현재 솔라시도에는 98MW 규모의 태양광이 가동 중이다. 국가 AI 컴퓨팅 센터가 필요한 전력양은 40MW라는 점에서 이미 충분한 전력량을 갖췄다는 평가다. 또 환원변전소와 삼호변전소의 잉여전력이 있다는 점에서 당장 가동에 들어가더라도 무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 대통령 공약만 의존=광주시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당시 ‘광주 국가AI컴퓨팅센터 확충’을 명시적으로 공약하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광주’를 유일하게 적시했다는 점을 믿고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지난 14일 삼성SDS 측과 면담을 갖고 광주 유치 타당성을 강조했지만, 전남도는 이미 지난 9월부터 삼성 측과 솔라시도 내 변전소 구축 시기와 부지 제공 여부를 논의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같은 날 삼성SDS 측에 도 차원의 지원 확약서를 작성해주는 등 적극 유치 활동을 펼쳤다.

결국, 삼성SDS 컨소시엄이 전남을 파트너로 선정하자 광주시 안팎에서는 “대통령 공약만 믿고 긍정 회로만 돌리다 뒤통수를 맞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광주시는 국가AI데이터센터 운영 경험과 AI 생태계 구축을 강점으로 내세웠지만, 기업이 중시하는 비용 경쟁력에서는 전남에 밀렸다는 평가다.

광주시는 대통령 공약과 기존 성과를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정작 실무적인 경쟁 대응에는 늑장을 부렸다는 점에서다.

전남이 물밑에서 촘촘한 준비를 할 동안, 광주시는 “우리가 최적”라는 명분만 내세웠다는 것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전남도도 같은 날(14일) 삼성 관계자를 만난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며 “좀 더 일찍 기업 니즈를 세밀하게 파악해 대응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실용주의에 밀린 ‘광주공약’= 이번 결정은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이 대선 공약보다 우선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정부는 국가AI컴퓨팅센터 공모가 두 차례 유찰되자 민간 지분을 70%로 확대하고 매수청구권 삭제, 국산 AI 반도체 의무 도입 조항 완화 등 기업 부담을 대폭 줄였다. 기업의 입지 선택권이 강화됐고, 결국 비용 논리가 정치적 약속을 압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기업의 자율적 선택을 존중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실용주의 원칙에 따라 기업이 최적의 입지를 선택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공약도 대통령실의 실용주의 기조와 기업 논리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탄식이 나온다.

이번 사업이 공공 인프라 구축임에도 정부가 ‘민간 자율’을 강조하며 사실상 입지 결정까지 기업에 맡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업계에서도 “삼성SDS가 네이버클라우드·카카오·KT를 모두 아우르는 ‘빅텐트’ 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사실상 단독 수주가 확실시됐고, 이에 따라 삼성의 선택이 곧 정부의 결정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만큼 기업 측 의향이 결정적 변수가 된 상황에서, 대통령실이나 정부 부처가 애초 공약 취지를 관철할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 아니냐는 억측도 나온다.

한 지방의원은 “애초 공약이 지켜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광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며 “지역 간 경쟁을 방치한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9월 광주에서 열린 국민보고대회(타운홀미팅)에서 대통령이 “광주의 AI를 위해 무엇을 더 해줄까”라면서 희망 고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AI중심도시’의 희망이 꺾인 광주 지역 여론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광주의 한 AI기업인은 “선거 때 표만 챙기고 광주는 버린 것 아니냐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된다”고 지역 여론을 전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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