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 성공 위한 두 가지 전제 -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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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의 강원도 타운홀 미팅에서, 한 도민은 “국회의원들이 매번 막대한 국비를 확보했다고 하는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방 국립대에 몸담고 있으면 이 말의 의미를 절감하게 된다.
대학 본부는 라이즈(RISE), 글로컬 대학, 국립대육성사업 등 각종 재정 사업으로 교비를 확보했다고 홍보하지만, 정작 그 성과는 체감되지 않고 재정 사업의 지표만 통제와 압박으로 다가온다. 필자가 속한 대학만 해도 국립대육성사업 지표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학부 대학을 추진하고 기존 학과 정원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었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는 첫째, ‘대학 자율성의 부재’가 있다. 국립대학의 법적 지위는 교육부 소속 기관으로 인사·교육·연구 등 대학 운영의 핵심 사항이 모두 교육부의 시시콜콜한 통제를 받는다. 재정지원사업마다 칸막이로 나뉜 예산은 ‘생선 토막’처럼 들어와 학과 차원의 중장기적 계획 수립을 불가능하게 한다. 심지어 예산이 10월에야 배정되어 회계연도가 끝나는 2월까지 소진하라는 독촉을 받기 일쑤이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과 연구의 장기적 혁신은 불가능하다. 과거 서울대 재학 시절에는 법인화에 반대했지만 국립대에 임용된 후에는 자율성 없이는 혁신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지나친 관료제적 통제로 교수들은 실제 교육과 연구보다 무의미한 행정에 지나치게 시간을 빼앗기고 있으며, 교수의 교육과 연구를 지원할 행정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둘째, ‘대학 민주주의의 취약함’의 문제가 있다. 외부의 통제 못지않게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부재도 심각하다. 현행 고등교육법은 사실상 총장의 독임제를 보장하고 있어 총장의 성향에 따라 대학 운영의 민주성 수준이 좌우된다. 대학의 독주를 막기 위한 평의원회의 다양한 토론에 기반한 심의는 ‘법적 기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기 일쑤고, 본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직원이나 학생 평의원은 소신 있게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다.
민주적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재정 사업은 특정 세력의 자원 독점으로 이어지거나 지역의 문제에 대한 천착한 고민과 연구,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고 책무성 없이 나눠먹기 식으로 집행되기 쉽다. 작고한 윤일성 교수는 지역 문제의 원인을 토건주의적 성장연합의 자원독점과 이를 막는 건전한 비판 세력의 취약함이라 지적한 바 있는데, 이는 대학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제시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망국적 교육 경쟁 완화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근본적 목표에 도달하려면 과거의 실패한 재정 사업처럼 나눠먹기식 예산, 성과 없는 진부한 산업 진흥책, 기술주의적 접근을 답습하는 관행적 틀에서 벗어나는 과감함과 파격성이 필요하다. 또한 소수의 자원 독점을 배제하고 고등교육 실태와 지역 격차에 대한 사회경제적 데이터,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 비전과 철학, 고등교육 정책 전문가, 로컬 혁신가, 당사자들의 숙의에 기반한 과감한 혁신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대학 자율성 부재’와 ‘대학 내 민주주의 취약성’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립대 규제 개선과 민주적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적이다. 대학 구성원들이 칸막이식 예산과 과도한 규제에서 벗어나 자율과 책임의 민주적 공간에서 교육·연구 혁신에 몰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학은 한국 사회의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는 창조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본부는 라이즈(RISE), 글로컬 대학, 국립대육성사업 등 각종 재정 사업으로 교비를 확보했다고 홍보하지만, 정작 그 성과는 체감되지 않고 재정 사업의 지표만 통제와 압박으로 다가온다. 필자가 속한 대학만 해도 국립대육성사업 지표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학부 대학을 추진하고 기존 학과 정원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었다.
둘째, ‘대학 민주주의의 취약함’의 문제가 있다. 외부의 통제 못지않게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부재도 심각하다. 현행 고등교육법은 사실상 총장의 독임제를 보장하고 있어 총장의 성향에 따라 대학 운영의 민주성 수준이 좌우된다. 대학의 독주를 막기 위한 평의원회의 다양한 토론에 기반한 심의는 ‘법적 기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기 일쑤고, 본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직원이나 학생 평의원은 소신 있게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다.
민주적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재정 사업은 특정 세력의 자원 독점으로 이어지거나 지역의 문제에 대한 천착한 고민과 연구,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고 책무성 없이 나눠먹기 식으로 집행되기 쉽다. 작고한 윤일성 교수는 지역 문제의 원인을 토건주의적 성장연합의 자원독점과 이를 막는 건전한 비판 세력의 취약함이라 지적한 바 있는데, 이는 대학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제시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망국적 교육 경쟁 완화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근본적 목표에 도달하려면 과거의 실패한 재정 사업처럼 나눠먹기식 예산, 성과 없는 진부한 산업 진흥책, 기술주의적 접근을 답습하는 관행적 틀에서 벗어나는 과감함과 파격성이 필요하다. 또한 소수의 자원 독점을 배제하고 고등교육 실태와 지역 격차에 대한 사회경제적 데이터,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 비전과 철학, 고등교육 정책 전문가, 로컬 혁신가, 당사자들의 숙의에 기반한 과감한 혁신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대학 자율성 부재’와 ‘대학 내 민주주의 취약성’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립대 규제 개선과 민주적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적이다. 대학 구성원들이 칸막이식 예산과 과도한 규제에서 벗어나 자율과 책임의 민주적 공간에서 교육·연구 혁신에 몰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학은 한국 사회의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는 창조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