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이동판매차·점방(구판장)시대 돌아오나
농어촌 식품사막화 심각…해소 정책 발굴 서둘러야
2025년 10월 19일(일) 19:05
/클립아트코리아
예전에는 “계란 있어요, 간고등어 팝니다”라고 방송하면서 마을을 돌며 생식품을 팔던 이동판매차가 많았다. 농사일로 바쁜 농어촌 마을과 들녘을 누비던 트럭은 고맙고도 유용한 존재였다. 또 웬만한 동네에는 지금의 식료품점 같은 점방 혹은 구판장이라는 게 있었다. 이 역시 농어민들의 생필품과 식품 수요를 담당하는 곳으로 주로 마을회관이나 중심지에 자리했다.

요즘 ‘농어촌 식품사막(Food desert)화 ’가 화두에 오르면서 이동판매차나 점방이 주목받고 있다. 소멸 위기 지역인 농어촌 지역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식품사막이란 식료품이나 일용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철수한 지역이라는 뜻으로, 집 근처에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이 드물어 신선식품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사막에 빗댄 말이다. 미국은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반경 800m 내 식품 소매점에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을 식품사막으로 규정하고 있고, 일본 역시 반경 500m 내 식료품점이 없는 곳에 사는 노인을 이와 비슷한 개념의 ‘장보기 약자’로 규정해 해소 방안을 찾고 있다.

지금 농어촌 지역의 식품사막화 현상은 심각하다. 농어촌에 살면서 신선한 농수산식품을 마음대로 구매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인구가 계속 줄고 고령화되면서 소멸위기에 처해 있는 농어촌 마을 중 상당수는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게가 없다. 202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 3만 7563개 행정리 중 음·식료품 소매업이 없는 경우가 73.5%에 달하는 실정이다.

물론 농어촌 식품사막화에 대한 정부와 관계기관의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소멸 위기 극복 차원의 다양한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푸드트럭’도 해소책의 하나다.

영암농협은 지난 2022년 4월부터 이동식 하나로마트 ‘기찬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휴일을 제외하고 하루 3개 마을, 주 5일 총 23개 마을을 순회하며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생수와 화장지 등 생필품은 물론 신선한 생고기까지 살 수 있다. 트럭 안 ATM기를 이용해 공과금도 낼 수 있다.

고흥 거금도농협도 2020년부터 ‘찾아가는 화목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총 35개 마을 중 슈퍼가 없거나 생활물품 접근성이 낮은 23개 마을을 대상으로 매주 화요일 10곳, 목요일 13곳을 순회한다. 트럭 냉장고에는 생선, 냉동육류 등이 갖춰져 있으며, 조미료·유제품·빵류 등 하나로마트 전용상품도 판매한다. 사전 주문도 가능해 필요한 걸 미리 말해두면 다음 장터날 가져다준다고 한다.

이렇듯 이동식 하나로마트는 식품사막화를 해소하고 고령자 삶의 편의를 높이는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식료품 접근뿐 아니라 금융·배달·상담 기능까지 갖춘 다기능 복합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러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매년 적자로 운영되다 보니 재정부담을 해소할 지원책이 시급한 데다 냉장 축산물 등 냉장·냉동 차량으로 이동 판매할 수 있는 품목에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또 ‘민생회복 소비쿠폰’이나 지역상품권 사용이 어렵다는 점도 개선해야 할 사안이다.

식품사막화는 단지 먹거리 부족만이 아니라 지역 생존과 사회적 불균형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다. 먹거리는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이며,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먹거리 복지는 곧 지역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의 식탁 풍경이 달라질 수 있다. 이동판매차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허름한 점방에서 식재료를 구하던 시절은 추억에 묻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식품사막화를 내버려 두는 것은 지역소멸 위기를 나 몰라라 하는 일이다.

/big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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