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전통문화 - 송민석 수필가·전 대학 입학사정관
2025년 10월 15일(수) 00:00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 우리의 전통문화는 날로 그 소중함을 잊어가고 있다. 한때 우리의 일상을 가득 채웠던 전통문화는 이제 그림자처럼 사라져 가고 있다.

농악놀이, 장승, 솟대, 달집태우기, 당산제, 지신밟기, 연날리기, 쥐불놀이 등 세시풍속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다. 과거 조상들이 지켜온 풍속은 삶의 지혜와 아름다움이 담긴 것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였다.

10여 년 전 가족 실태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무려 8명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노부모 부양의식 약화와 노년층의 소외를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해져온 전통 놀이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집들이나 생일 잔치가 없어지고, 삼촌과 이모가 사라지면서 가족 모임이 없다 보니 아파트 입구마다 당장 필요하지 않는 교자상, 병풍, 밥상이 수북이 버려지고 있다. 전통문화의 사라짐은 우리 문화의 다양성이 그만큼 위협받고 있다는 증거다.

친인척의 개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당숙은 아버지의 사촌 형제를 의미하며 촌수는 5촌이라는 것을 아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가정은 부모와 형제로부터 출발하여 친족으로 확대되고 그 총화가 바로 인류가 아닌가. 우리 말에 유난히 친족 호칭이 발달해 온 것은 그만큼 ‘사랑의 공동체’를 소중하게 여겼다는 증거일 것이다. 삼촌, 이모, 숙모와 같은 정겨운 친족을 일컫는 호칭이 되살아나는 세상이 그립다.

농경시대에는 책가방은커녕 ‘책보’라는 무명천에 책을 둘둘 말아 허리나 등에 질끈 동여매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당시에는 울타리 넘어 오가는 인정 속에 그래도 살만했었다. 형제자매의 결혼과 출산, 우애를 나누며 오순도순 살아온 우리들이다. 외아들로 태어난 필자의 선친은 8남매를 두어 자손이 60명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삼일장 장례식도 길다고 한다. 제사 때문에 이혼하고 싶다는 며느리들의 명절증후군이 가족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20∼30년 후에는 제사 문화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각종 예의범절을 비롯해 명절과 제사 문화가 사라지면서 전통 가치관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문화는 과거의 유산을 넘어 미래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 교수는 서구 사회가 배워야 할 기치로 한국의 ‘효(孝) 문화’를 꼽았다.

“난 어쩔 수 없이 제사는 지내지만, 자식에게 물려 주지 않는다”라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사교육 열풍으로 고도의 경쟁 속에 결혼보다는 나 홀로 살다 간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제사를 잘 모셔야 그 집안이 잘된다고 여기던 것은 옛말이 되고 있다.

결혼과 직업도 능력 중심의 고시 사회로 바뀌면서 형제도 없고 딸 아들 구분이 사라지고 사촌도 멀어지고 있다. 밥할 줄 모르는 명문대 출신 며느리 맞아 설거지에 아기까지 돌보는 아들이다. 처갓집에 더 신경을 쓰고 집안 벌초나 문중 제사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다.

요즘은 디지털 기술력이 생존의 조건이 된 시대다. 식당 입구에서 키오스크 주문을 하지 못해 머뭇거리고,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에 갈 때도 집에서 예매하는 젊은이와 달리 어르신들은 번호표를 뽑고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정보 접근이 제한된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핵가족화의 급격한 변화로 소외되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정신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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