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영화제 - 오광록 서울취재본부 부장
2025년 09월 19일(금) 00:00
그 바다의 넓이와 거리가 내 생각을 가로막았고. 소설가 김훈은 신안 흑산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2시간 남짓 가야 하는 흑산도는 거친 바다를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오지다. 유배지였던 흑산도에 대해 김훈은 ‘생각이 멈출 정도로 멀고 험한 곳’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흑산도에 다가서면 바다 한 가운데 검은 빛이 먼저 눈에 띄는데 이는 흑산도에 자생하는 동백나무가 멀리서 바라보면 검은색으로 보이는 탓이다. 과거 황금어장에 몰려든 어선들로 “돈을 포대로 던져 놓았다”는 말이 돌 정도로 흑산도는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하지만 급속한 인구 감소에다 교통 불편 탓에 인구소멸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흑산도에는 지난 8월 기준 2045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적막한 흑산도에 지난 8월 15일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휴가철이면 관광객이 밀려들기도 하지만 이날은 ‘2025 흑산섬영화제’를 보기 위해 뭍 주민들이 찾으면서 배편이 모두 동났다. 영화제가 열린 흑산면 사리분교(흑산초등학교 흑산서분교장)는 오후 5시가 넘도록 ‘팔월 땡볕’이 기승을 부렸지만 주민과 관광객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첫 흑산섬영화제의 초청작은 흑산도의 화려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흑산도 파시’(강제윤·최현정 공동연출, 강호진 촬영감독)였다. 부둣가 주변 배 위에서 생선을 사고팔던 파시는 흑산도 경제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를 기억하는 섬 주민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박수를 치거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해가 저물면서 불어오는 바다 바람과 섬마을의 고요는 관광객에게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영화제가 열린 사리마을은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의 유배지였고 마을엔 그가 머물던 사촌서당이 남아 있어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관광 상품’으로도 경쟁력이 충분했다. 백미는 단연 참전용사이자 나팔병 출신인 90세 류준열옹의 연주였다. 하모니카로 ‘고향의 봄’과 ‘오빠생각’을 연주하자 박수 갈채가 멈추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흑산도의 멋진 도전’은 섬에 활기를 불어 넣는 ‘성과’로 이어질 것이다.

/오광록서울취재본부 부장 kroh@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758207600789566087
프린트 시간 : 2025년 09월 19일 02:5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