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블록 위 장애물 버젓이...시각 장애인들 앞길 막는다
점자블록 위 장애물 적치 금지 ‘교통약자법’ 개정 1년…광주 곳곳 둘러보니
물건·입간판·전동킥보드 등 뒤덮여 통행 방해에도 단속은 ‘0건’
자치단체·시민들 법 시행 몰라…피해는 장애인들에게 고스란히
2025년 09월 15일(월) 21:05
15일 광주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 옆에 구조물이 세워져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시각장애인의 통로’인 인도 위 점자블록에 장애물을 놓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지자체조차 법 시행 사실을 몰라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광주시의 번화가와 기차역 등지에서는 점자블록에 개인형 이동장치(PM)가 주차되거나 입간판, 음식물쓰레기통 등이 놓여 시각장애인들의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광주시 동구 5·18민주광장에는 점자블록이 광장 출입구까지 연이어 놓여있었으나, ‘5·18 진상규명’ 글자 조형물이 보도에 바짝 붙어 있어 통행이 불편한 상태였다. 또 옛 전남도청 복원 공사를 위해 세운 공사장 가림막이 점자블록을 가로막고, 행사·공사 차량 3대가 점자블록 위로 잇따라 주차돼 있었다.

동구 충장로와 금남로 일대, 남구청이 있는 백운광장 일대에도 점자블록 위에 전동킥보드나 자전거 등 PM 여러 대가 주차돼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카페 거리’로 유명한 동구 동명동에서는 식당 앞 점자블록에 1m 남짓 높이의 음식물 쓰레기통이 놓여 있었으며, 대인동 일대에서는 가게 입간판들이 점자블록 위에 줄줄이 세워져 있었다. 인도를 침범해 차를 세우는 이른바 ‘개구리 주차’를 하면서 점자블록을 가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광산구 광주송정역 일대에서도 점자블록 위에 세워진 전동킥보드와 자전거가 여러 대 발견됐다.

이처럼 점자블록을 가로막고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자 과태료 징수 대상이다.

지난해 9월 15일부터 시행된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법 개정안’은 ‘장애인을 위한 보도 이용을 방해하거나 이를 훼손한 자에게는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방해’ 행위에는 장애인을 위한 보도에 물건을 쌓거나 공작물을 설치하는 등 행위가 포함됐다.

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물론 지자체조차 법 개정 1년이 지나도록 “단속 사실을 몰랐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광주시민 김동우(49)씨는 “과태료가 부과되는 사실을 몰랐다”며 “평소 점자블록을 주의깊게 보지 않아서 잘 몰랐다”고 말했다.

박혜숙(여·70)씨도 “거리를 지나다 보면 자전거 등이 많이 올라가 있어 불편했는데, 과태료 대상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광주 지역 지자체는 법 개정 이후 한 번도 제대로 단속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광주시 5개 자치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점자블록 통행을 방해해 ‘교통약자법 위반’ 사유로 단속을 한 건수는 0건이었다.

각 자치구는 법 시행 사실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광주시 북구의 경우 법령에 단속 권한이 명시되지 않았다며 “법이 허술하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

광주시 북구 관계자는 “현행법상 과태료 부과 주체가 ‘교통행정기관’으로 돼 있는데, 점자블록 도로에 대한 교통행정기관이 규정돼 있지 않으니 단속 권한도 없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각장애인들은 “법이 만들어지고도 아무런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법 개정 당시만 해도 ‘시각장애인들의 숙원이 해결됐다’고 반겼는데, 지자체가 무관심해 지난 1년 동안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증시각장애인인 오병인씨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점자블록인데, 정작 통행하면서 안 보이는 볼라드(차량 진입 방지봉)와 PM 등에 무릎을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차도로 떨어질 뻔한 일도 비일비재하다”며 “시각장애인들이 다니는 길이 온통 장애물 투성이 인데다 나홀로 불편하다고 신고하기도 마음에 걸려 불편한 채 살고 있다. 단속 주체도 시민도 경각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재희 기자 he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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