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하고 성스러운 목소리…광주에 감동 전할 수 있어 영광”
독일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합창단’ 광주 교류협력 공연 성료
에마누엘 스코벨 대표 “아이들이 음악으로 세상과 이어지길…”
관객들, 숨죽여 무대 감상…합창단, 향교서 전통문화 체험도
2025년 09월 14일(일) 19:35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합창단이 지난 11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에마누엘 스코벨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와 단원들의 모습.
무대 위에는 작은 오르간과 첼로, 더블베이스, 그리고 42명의 소년뿐이었다. 단출한 편성이었지만 노래가 시작되자 공간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켜켜이 쌓여 올라가는 목소리는 마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처럼 맑고 투명했고, 객석은 독일의 작은 교회 안으로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1일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합창단의 공연 무대. 자매결연을 맺은 광주와 라이프치히의 교류 협력 공연이자, 전당의 ‘GAC 공연예술축제 그라제’의 포문을 여는 자리였다. 안드레아스 라이체 음악감독의 지휘 아래 합창단원 42명이 무대에 올랐으며 오르간 펠릭스 쇤헤어, 첼로 사샤 베어하우, 더블베이스 틸만 슈미트가 협연했다.

성스러운 소년들의 노래에 객석은 숨을 죽였다. 손을 모은 채 기도하듯 합창단을 바라보기도 했고, 또래의 어린 관객들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무대를 감상했다. 공연 중간 합창단이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여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을 때는 박수갈채와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성 토마스 합창단은 1212년 설립된 이래 800년 넘는 전통을 이어온 독일 대표 소년합창단이다. 18세기 바흐가 토마스칸토르(Thomaskantor·음악감독)로 재직하며 ‘마태수난곡’과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등을 초연한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매주 이어지는 모테트(성악곡)와 예배는 지역 주민은 물론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기자는 합창단의 운영을 책임지는 에마누엘 스코벨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광주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영광”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예술적 방향 설정과 레퍼토리 선택 등 합창단의 예술적 영역을 칸토르인 라이체 음악감독이 담당한다면, 스코벨 대표는 예술 외의 영역을 맡은 인물이다. 토마스칸토르는 무대 위에서, 스코벨 대표는 무대 뒤에서 합창단을 함께 이끌어 가는 구조다. 특히 스코벨 대표는 재정과 운영, 해외 투어와 홍보, 단원들의 생활까지 실질적인 살림살이를 챙긴다.

그와 단원들은 공연 전날 광주의 전통 공간을 둘러보고 민화도 그리며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향교에서는 유생복을 입고 유생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바흐의 코랄(합창곡)을 불러주기도 했다.

스코벨 대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도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며 “아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남겨준 광주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전했다. 이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울, 부산 등에서 무대에 선 적은 있었지만, 합창단원만으로 내한해 순수 합창 공연을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소년들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지는 합창의 본질을 광주 관객에게 전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성 토마스 합창단 단원들이 광주향교에서 유생복을 입고 합창을 하는 모습. <에마누엘 스코벨 제공>
합창단은 단순한 공연 단체가 아니라 학교이자 교육 기관이다. 9세에서 18세까지 100여 명의 단원들이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며, 라이프치히시가 운영하는 토마스학교에서 공부한다. 아침에는 일반 수업을, 오후에는 음악과 합창 수업을 받고 주말에는 성 토마스 교회에서 예배와 연주를 한다. 일상과 음악이 맞닿아 있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학업과 예술을 동시에 익히며 합창단의 전통을 이어간다.

스코벨 대표는 “소년합창단은 성인합창단과 달리 아이들에게 노래하는 기술보다는 음악을 사랑하고 그 과정을 즐기는 마음을 가르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며 “아이들은 매주 예배와 공연을 준비하며 책임감을 배우는 한편 작은 목소리 하나가 모여 거대한 화음을 이룰 때의 감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코벨 대표는 광주 소년소녀합창단 이야기가 나오자 반가움을 표했다. “아이들이 노래로 관객을 감동시키는 경험은 합창단뿐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큰 의미가 있다. 지금은 음악을 주로 듣기만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직접 노래하고 연주하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며 “광주에 이런 합창단이 있다는 건 큰 자산이며,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광주 관객과 합창 꿈나무들을 향해 메시지도 남겼다. “노래는 삶의 균형을 주고, 자신과 타인에게 기쁨을 선물합니다. 이번 공연이 광주 시민께 감동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해요. 아울러 합창을 사랑하는 아이들이 앞으로도 노래로 세상과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글·사진=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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