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라는 드라마 - 김여울 디지털·체육부장
2025년 09월 12일(금) 00:00
양궁하면 한국이다. 한국 양궁하면 우선 떠오르는 선수 중 한 명이 김우진일 것이다. 충북체고에 재학 중이던 2009년 전국체전에서 12발의 화살을 과녁 한 가운데 꽂아 넣으면서 17살에 세계신기록 보유자가 됐다. 이후 그가 걸어 온 국가대표의 길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는 한국 국가대표 선발이다. 국가대표 선발전 11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그는 올림픽에서만 무려 5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우리나라 올림픽 최다 금메달리스트다.

당연해 보이는 메달레이스지만 사실 당연한 것은 없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정해져 있지 않은 결과 때문이다. 스포츠를 드라마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광주에서도 김우진은 드라마를 썼다.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주인공이었다.

지난 10일 광주 2025 현대세계양궁 선수권대회에서는 3개의 금메달이 나왔다. 이날 리커브 종목 단체전 메달 결정전이 진행되면서 혼성·남자·여자 단체전의 금메달 주인공이 탄생했다.

가장 먼저 열린 혼성전에서 김우진은 ‘광주의 신궁’ 안산과 호흡을 맞췄다. 고향에서 열리는 세계 대회에서 안산은 부담감 때문인지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두 사람은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김우진은 바로 이어 남자 단체전에 출격해서 이우석, 김제덕과 금메달을 쐈다. 희극으로 끝난 하루였지만 이날 오전 김우진은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단체전 메달 결정전에 앞서 남자 개인전 예선전이 펼쳐졌다. 혼성 대표팀을 뽑는 예선 라운드에서도 1위를 했던 만큼 사람들은 ‘3관왕’ 기대감으로 김우진을 지켜봤다. 결과는 32강 조기 탈락이었다. 지켜보는 이들 입장에서는 비극이었지만 김우진에게는 자신이 주인공인 양궁 드라마의 그저 한 장면이었다.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위한 복선이었다.

개인전 조기 탈락 뒤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건 그는 “결과가 정해져 있다면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가 없지 않겠냐”는 말을 남겼다. 절대 강자도 없고 불가능도 없다. 그게 스포츠의 매력이다.

/김여울 디지털·체육부장 wo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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