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작은 미술관에서 만나는 평범한 날의 특별한 이야기
100년 전통 나주정미소 개조
복합문화공간 내 미술관 전시
구승희·김태형·윤기원 51점
개성적이면서 동화같은 작품
2025년 09월 08일(월) 19:25
김태형 작 ‘선택된수집03’
나주정미소는 근대 유산이자 학생 독립운동의 회합 장소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공간이다.

지난 1920년대 초 문을 연 이래 나주정미소는 지역의 대표 정미소로 자리매김해왔다. 전남 제일의 곡창지대인 너른 나주평야와 생명의 젖줄인 영산강을 거느리고 있어 나주에서는 질 좋은 쌀이 생산됐다.

한편으로 정미소라는 근대식 도정시절의 명칭 이면에는 서민들의 시난고난한 삶과 애환도 깃들어 있다.

안타깝게도 정미소는 지난 2010년 문을 닫기에 이르렀고, 나주시는 2018년 건축물 5개 동과 부지를 사들였다. 이후 도시재생사업을 추진, 지난 2023년까지 4동이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운 공간이 탄생됐다.

그러다 마지막 남은 2동이 지난 3일 복원되면서 정미소는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이와 맞물려 정미소 4동에 자리한 나주 작은미술관(작은미술관)이 개관 2주년을 맞아 기획 초대전을 열어 눈길을 끈다.

윤기원 작 ‘주황모자’
‘수줍은 고백, 평범한 날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오는 29일까지)는 지난 2024년 개관한 작은미술관이 시민과 나주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전하는 ‘가을의 감성 선물’이다.

전시는 읍성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이 주관하며, 나주시와 문체부, 문예위가 주최한다. 초대된 구승희, 김태형, 윤기원 세 명의 모두 51점의 작품은 저마다 개성적이며 독창적인 아우라를 발한다.

김현희 총괄 큐레이터는 “작은미술관이 지난해 문을 연 이후 지역 주민들은 ‘우리 동네에도 미술관이 들어섰다’며 매우 반가운 반응을 보였다”면서 “지난해 ‘흔한 동네 풍경’을 주제로 전시를 연 데 이어 올해 두번째로 일상을 공유하는 주제의 전시를 열게됐다”고 전했다.

이명규 협동조합회장은 “나주는 유서 깊은 역사와 찬란한 문화 예술을 간직한 고장”이라며 “나주정미소를 매개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펼쳐져 지역 주민은 물론 외지인들에게도 문화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구승희 작 ‘축제’
전시는 주제가 말해주듯 소박한 일상과 담담한 시선을 통해 작가 개인적 삶을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삶의 이력과 예술활동을 펼쳐온 작가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관람객에게 ‘나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보편적인 정서와 울림을 안겨준다.

세 작가는 모두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을 떠나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전도유망한 예술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구승희 작가는 중국 갤러리에 소속돼 활동할 만큼 중국에서 핫한 작가다.

마치 동화의 한 장면에서 튀어나온 듯한 분위기의 그림은 보는 이에게 편안함과 따스함을 준다. 분채와 아교 성분을 조합한 재료로 그린 작품은 은은하면서도 편안한 감성이 특징이다. 작가는 인물의 표정 가운데 특히 눈동자를 통해 주제의식을 표현한다. 육각수 형태의 눈망울, 섬세한 붓질로 구현한 주변 배경은 작가가 상당기간 공을 들여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김태형 작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을 초점화했다. “현실에 대한 ‘내면의 고백’을 드러내는 작업”이라는 고백에서 드러나듯 반복되는 일상에 작가만의 감성과 상상력을 입혀 마치 ‘숨은 그림 찾기’ 같은 분위기를 환기한다. ‘토해내듯 분출하듯’은 섬세하면서도 복잡한, 그러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무늬를 드러낸 그림으로 발길을 붙든다.

육아를 하며 집에서 작업을 했던 경험과 당시의 감정이 작품 곳곳에 의미 있는 흔적으로 투영돼 있다.

일상에서 만났던 인물들을 화폭으로 옮겨온 윤기원 작가의 그림들도 새로운 감성으로 관객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강렬하지만 은은한 색감은 작가가 인물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표현한 것으로, 맞춤한 색을 찾기 위한 그만의 고뇌와 여정을 가늠하게 한다.

‘주황모자’, ‘뽀글머리’ 등 인물들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지만, 붓질에 의해 재탄생된 독창적인 인물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주인공’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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