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경험은 어떻게 아름다움을 잉태하는가
고흥 출신 최상경 시인 첫 시집 ‘네모 속에 들어온 달’ 펴내
2025년 08월 23일(토) 10:45
36년이라는 긴 시간 교육 현장에 있다 퇴임 후 시인으로 돌아온 이가 있다. 시인은 내면에는 오랫동안 감성의 울림이 출렁이고 있었다. 고흥 출신 최상경 시인이 주인공.

최 시인이 최근 첫 시집 ‘네모 속에 들어온 달’(상상인)을 펴냈다.

순천 효산고 교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시인은 “36년의 교직이 끝나는 자리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며 “막다른 골목길에서 아스라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다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꽃잎을 보았다”고 전했다.

이번 시집은 김학중 시인의 평대로 “실패한 경험의 순간이 어떻게 지금 아름다움을 잉태하는지” 보여주는 시들로 가득하다. 지난 시절 삶과 역사에서 연유한 고통과 상흔, 오늘의 우울한 현실이나 어두운 그림자는 특유의 절제된 정조와 표현에 힙입어 잔잔한 울림으로 전이된다.

“달이 네모 속으로 들어왔다// 네모난 집/ 네모난 교회/ 네모난 학교/ 네모난 책/ 그 속으로 구겨 넣어지는 아이들까지// 검은 장막을 드리우고/ 심장의 모서리를 깎는 밤// 직진의 꿈/ 직립의 고통/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얼굴을 바꾸며 달거리 하는 달님은/ 나쁜 피를 흘리는/ 네모 속으로 들락거린다…”

표제시 ‘네모 속에 들어온 달’은 ‘네모’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갇힌 사회의 단면을 은유한다. 모든 것이 ‘네모’에 포섭되고 포획되는 현실은 질식할 정도로 “나쁜 피를 흘리”게 한다. 집도, 학교도, 교회도, 책도, 일상의 많은 사물과 공간이 네모에 구속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화자는 절망하지 않고 “네모난 내게 들어와 사는 꽃잎들”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김학중 시인은 해설에서 이번 작품집에 대해 “과거의 아름다운 순간이 다름 아닌 현재의 노래임을 알려준다”며 “그것이 최상경의 시가 아름다움으로 구조해 낸 시의 신호들이며, 그 신호들로 이루어진 비밀의 서신인 것이다”고 평한다.

한편 최 시인은 순천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영광 꽃무릇축제 문학상 시부문 수상, 전남문화재단 기금을 수혜받았다.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순천북부교회 장로와 순천대 평생교육원 시우림 동우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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