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자연이 건네는 말’] 차우세스쿠, 침팬지 그리고 윤 어게인
2025년 08월 14일(목) 00:00
김건희가 구속되었다. 전직 대통령 부부가 함께 구속된 것은 세계 최초 사례라고 한다. 내 기억에는 그렇지 않다. 1989년 12월 25일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세스쿠 대통령과 부인 엘레나가 반역, 부패, 학살의 혐의로 체포됐다. 군부대에서 열린 군사재판은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사형을 선고받았고 판결 직후 부부는 총살되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절대 권력을 쥐고 있던 지도자가 군중의 야유 속에서 쓰러진 것이다. 권력의 궤도는 가파르고 하강은 순식간이었다.

이 사건은 정치사에서 충격적이다. 그러나 동물행동학의 시선으로 보면 인간 사회의 권력 교체는 동물 사회의 리더 몰락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침팬지 사회에는 분명한 서열이 있다.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수컷 ‘알파’는 단순히 힘이 세다고 얻어지는 자리가 아니다. 그는 동맹을 만들고 먹이를 나누며 싸움을 중재하고 허세를 부리며 무리를 통제한다. 하지만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힘이 약해지거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면 어제의 충성스러운 동맹이 가장 먼저 등을 돌린다.

탄자니아 곰베 스트림 국립공원에서 제인 구달은 수십 년간 침팬지를 관찰하며 인간과의 유사성을 기록했다. 젊고 야심 찬 험프리와 피피 형제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던 알파 수컷 마이크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놓고 공격하지 않고 회의적인 표정과 무심한 태도로 그의 권위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러다 어느 날, 형제는 무리 앞에서 공개적으로 그를 공격했고, 다른 수컷들이 가세했다. 알파는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며칠 뒤 그는 조용히 무리를 떠났다.

침팬지의 알파 축출은 단순한 힘싸움이 아니라 군중 앞에서의 굴욕을 동반한다. 공개적인 공격과 추격, 굴복의 순간을 무리 전체가 목격한다.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행동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다. “이제 새로운 리더가 무리를 이끈다”는 선언이자 경고인 셈이다.

차우세스쿠 부부 처형도 비슷한 상징성을 지닌다. 단순히 두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비밀리에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재판과 총살은 공개적으로 카메라 앞에서 이뤄졌다. 이는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루마니아 사회 전체에 “권력의 시대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는 의례였다.

동물 사회에서 폭군형 알파는 오래 가지 못한다. 지나친 공격성과 독점은 동맹을 약화시키고, 반대 세력을 키운다. 힘이 빠지면 보복은 즉각 찾아온다. 반면, 온건한 알파는 권력을 오래 유지한다. 먹이를 나누고 싸움을 중재하며 어린 개체를 보호하는 알파는 인기라는 사회적 자본을 얻는다.

차우세스쿠는 1965년 집권 초기에는 개방적인 이미지와 민족주의를 내세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폭력적이고 폐쇄적인 통치로 기울었다. 1980년대 후반 루마니아 경제는 파탄났고 비밀경찰은 국민을 억압했다. 그의 권력은 공포 위에 세워졌지만 동맹을 유지시킬 신뢰는 사라졌다. 결국 군부와 당 간부들이 등을 돌린 순간 그는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침팬지 사회의 폭군 알파가 몰락하는 순간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흥미롭게도 권력자의 몰락은 느리게 부식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엔 순식간에 무너진다. 침팬지의 경우 몇 달 동안 은밀히 세력 교체 움직임이 있다가 하루 만에 알파가 축출된다. 인간 사회에서도 혁명이나 쿠데타는 오랜 불만과 암중 모의가 쌓이다가 하루 혹은 며칠 만에 정권이 무너진다.

이런 속도 변화는 물리학적 현상과도 비슷하다. 얼음이 녹는 과정에서 온도가 조금씩 오르다가도 어는점에 이르면 갑자기 상태가 바뀌듯, 사회적 긴장도 임계점을 넘으면 급변한다. 정치든 동물 사회든 임계점의 순간은 돌이킬 수 없다.

우리는 인간 사회를 문명이라고 부르지만 권력의 작동 원리는 여전히 진화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 정치적 동맹, 배신, 공개적 굴욕 그리고 빠른 몰락은 정글에서도, 궁정에서도 같은 리듬으로 반복된다. 차우세스쿠의 몰락과 곰베 침팬지의 알파 축출이 닮은 이유는 우리가 공통의 조상을 가진 영장류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 유사성을 직시하는 건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교훈이 있다. 동물 사회에서든 인간 사회에서든 권력은 혼자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 신뢰, 그리고 협력 위에 세워진다. 폭군은 결국 동맹을 잃고 고립 속에 무너진다.

차우세스쿠 부부가 총구 앞에서 맞은 최후 그리고 정글 속 알파의 쓸쓸한 퇴장은 간결했다. 그리고 그 집단은 새출발했다. 그런데 여전히 ‘윤 어게인’을 외치는 이들은 뭔가? 그들의 임계점은 도대체 어디일까? 부디 침팬지에게서라도 배워야 한다. 나는 루마니아 민중이 부럽다.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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