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광주예술의전당 11시 음악산책 ‘명작시리즈’] 명화에 가슴 뭉클…라틴 선율에 매혹
‘노인과 바다’ 주제 4개의 장
프리다 칼로 자전적 그림 스크린에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삶 ‘울림’
라틴 재즈 그룹 ‘라틴 팩토리’
특유의 감성·리듬에 관객들 몰입
25일 ‘보바리 부인’…하반기도 계속
2025년 08월 04일(월) 20:05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지난달 29일 ‘11시 음악산책-명작시리즈’ 공연이 펼쳐졌다. 콘서트 가이드 안인모 씨.
룸바 리듬이 울려 퍼지는 순간, 공연장은 어느새 남미의 해안가로 변한다. 끈적한 바닷바람, 철썩이는 파도소리. 한켠에서는 커피 농장 노동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원두를 갈고 있다.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지난달 29일 열린 ‘11시 음악산책-명작시리즈’ 상반기 마지막 공연은 무더위에 지친 관객들을 헤밍웨이의 쿠바로 안내했다.(헤밍웨이는 말년에 쿠바에서 머물며 작품을 창작했다.) ‘노인과 바다’를 주제로 펼쳐진 이번 무대는 명작을 중심으로 프리다 칼로의 강렬한 명화, 라틴 특유의 열정적인 음악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공연을 이끈 피아니스트 안인모는 “그대, 시지프스여”라는 인사와 함께 하나의 신화를 무대 위로 불러냈다. 신을 기만한 죄로 바위를 산 위로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벌을 받는 시지프스의 이야기. 그는 이번 공연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찢기고 뜯기며 살아가는 현대의 시지프스들에 대한 연민, 용기에 대한 찬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공연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따라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1막 ‘84일’은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날들, 2막 ‘육체적 장애’는 인간의 한계와 고통, 3막 ‘청새치와 상어떼’는 생존을 향한 사투, 4막 ‘인생이여 만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향한 찬가를 담았다.

불굴의 의지와 치열한 생명력을 대표하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 무대와 함께 소개되며 메시지를 더욱 깊이있게 전했다. 프리다는 소아마비와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격렬한 사랑과 갈등 속에서도 그림으로 삶을 직시하고자 했던 화가다. ‘상처입은 사슴’,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 등 자전적인 그림들이 스크린에 투사되며,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그녀의 생이 관객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이날 무대의 열기를 더한 건 라틴 재즈 그룹 ‘라틴 팩토리’였다. ‘모리엔도 카페’, ‘베사메 무초’, ‘관타나모의 여인’ 등 라틴 특유의 감성과 리듬이 살아 있는 곡들을 연주하며 관객들을 몰입시켰다. 프리다 칼로가 생의 마지막에 남긴 작품 ‘비바 라 비다(인생이여 만세)’에서 영감을 받은 콜드플레이의 동명곡을 라틴풍으로 재해석해 연주하기도 했다.

라틴 재즈그룹 ‘라틴팩토리’의 모습.
인기 시리즈답게 이번 공연 역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특히 여름방학을 맞은 어린이 관객들이 부모와 함께 객석을 채우며 특별한 문화 체험의 장을 이뤘다. 미리 ‘노인과 바다’를 읽고 온 아이들은 공연 중간 안인모 가이드의 질문에 손을 번쩍 들어 대답하며 적극적인 호응을 보였다. 윤도경(12)·도담(10) 남매도 그중 하나였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나와서 재미있었어요. 신나는 음악과 함께 들으니 책의 분위기를 더 느낄 수 있었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명작시리즈 공연은 상반기 광주예술의전당에서 가장 인기있는 기획 공연 중 하나였다. 상반기 4개 공연 모두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하반기 공연에도 관심이 뜨겁다.

공연을 이끌어온 안 씨는 “한 학부모 독서 모임에서 다섯 명이 관람을 왔다가, 다음 달에는 자녀들까지 스물 두 명이 함께 왔던 적도 있었다”며 “문학과 음악, 미술의 융합을 진심으로 즐겨주시는 광주시민들의 몰입에 매 순간 뭉클함을 느낀다”고 감사를 전했다.

안 씨는 클래식을 연구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 ‘가이드’다. 바쁜 일상에서도 삶을 사유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그가 지난해 그림과 클래식을 엮어서 쓴 책 ‘루브르에서 쇼팽을 듣다’가 토대가 됐다.

그는 “작가가 깊이 사유하며 써 내려간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삶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면, 좀 더 인간답고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며 “명작시리즈에는 소중한 삶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깊이 있게 누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전했다.

명작시리즈는 하반기에도 이어진다. 짙어가는 가을, 또 한 해를 돌아보며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작품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오는 25일 귀스타브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을 비롯해 ‘위대한 개츠비’(9월 23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10월 28일), ‘안나 카레니나’(11월 25일) 등이 이어진다.

안 씨는 “공연 이후 명작시리즈 책으로 독서 모임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로 이런 ‘삶의 변화’를 기대해왔다는 점에서 가슴이 벅찼다”며 “명작을 가까이하면 자연스레 삶에도 여유와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명작시리즈가 있는 광주가 문학소녀와 문학소년의 도시로 소문이 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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