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사는 이들을 위한 헌사’
순천 출신 문정서 시인의 시집 ‘야생의 여름을 주세요’
2025년 07월 26일(토) 09:52
‘야생의 여름을 주세요’

다소 낭만적으로 보이는 시집의 제목이 눈길을 끈다. 휴가철과 맞물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려니 생각할 수 있다.

순천 출신 문정서 시인의 시집 ‘야생의 여름을 주세요’(상상인)는 낭만의 여름을 담고 있지 않다. 예외 없이 올 여름도 폭염과 폭우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한 환경재앙은 점점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집은 약자들에 대한 사유와 시를 쓰는 궁극적인 지향을 담고 있어 묵직하게 다가온다. 한마디로 ‘흔들리며 사는 이들을 위한 헌사’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따스한 애정의 눈길을 건넨다. 차분한 응시 이면에 드리워진 소외되고 약한 자들에 대한 연민은 깊고 아련하다. 문 시인은 시를 쓰는 본질적인 이유를 상처 입은 존재들에 대한 대언과 공감에 두는 듯하다.

“흐른다는 것은 생의 힘을 조금 빼는 것/ 빗물을 털고 날개 펼쳐 훌훌 날아가렴”(‘흘러가는 새’ 중)의 구절이나, “일생은 간데없어 죽어서도 아름다워라/ 겨울의 드라이플라워”(‘꽃 화장’ 중) 같은 표현은 화자가 응시하고 집중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시에서 낮고 연약한 생명이나 미물은 작지만 의미있는 주체로 재생된다.

“사과, 억울하지만/ 이름을 빌려주기로 한다/ 동그랗고 빨갛고 탐스러워/ 베어 물기도 아까운데/ 온갖 난처한 일의 해결사/ 그래/ 이름 한번 빌려주자”

‘사과를 심은 이유’의 일부분이다. 작품 속 ‘사과’는 과일로서의 존재보다는 억울한 일을 오롯이 담당하는 희생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한 입 “베어 물기도” 아깝지만 세상의 궂은일과 거추장스러운 일, 치욕스러운 일을 대변하는 사과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이선애 시인은 “문정서 시인은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 갇힌 이들을 한 편 한 편의 시로 불러내며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진다”며 “시집 곳곳에서 발견되는 사회의식과 이타적 태도는 문정서 시의 윤리적 깊이를 형성하고 있다”고 평한다.

한편 전남문인협회 회원인 문 시인은 2025년 전남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를 받았으며 전남백일장 장원을 수상했다. 순천대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시우림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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