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후 5개월…작음의 위대함 넘치게 경험한 날
작은 일기-황정은 지음
2025년 07월 25일(금) 00:00
황정은 소설가의 에세이 ‘작은 일기’는 계엄 선포일인 12월 3일부터 5월1일까지를 기록한 책이다. 윤석열 탄핵을 요구하는 금남로 집회 모습. <광주일보 자료 사진>


세면대 밸브에서 물이 새는 걸 발견한 후 집수리 기술자에게 연락했다. 한달 뒤 마감해야 할 단편소설을 이어썼다.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을 읽으며 주인공의 고독과 고립에 마음 아파했다. 번역서 두 권과 귤을 주문했다. 오후 열시 이십삼분. 계엄이 터졌다. ‘百의 그림자’, ‘디디의 우산’의 소설가 황정은이 기록한 12월 3일 화요일의 일기다.

인터뷰집, 백서, 르포 등 다양한 형식으로 불법 계엄부터 윤석열 파면까지를 기록한 책이 출간되는 가운데 황정은이 12월 3일부터 5월1일까지의 일기를 묶은 책 ‘작은 일기’를 펴냈다.

계엄 선포 당일 동거인과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간 후 여러 날 광장에 머물렀던 그는 “작아서 자주 무력했지만 다른 작음들 곁에서 작음의 위대함을 넘치게 경험한 날들”이었기에 “사소하고 부족한 기록이지만 훗날 이날들을 돌아보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책을 출간했다.

계엄령 선포 후 사회 상식의 수준이 무너져가는 걸 지켜보는 일은 고통이었지만 그는 매일의 삶을 일기로 기록한다. 저자는 집회 현장을 찾아 목소리를 보태고, 불안함과 걱정 속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일기를 쓰고 소설을 써내려갔다. 5개월의 일기를 읽다보면 새삼스래 우리가 엄청난 시간을 함께 견뎌왔음을 느끼게 된다. 불안과 긴장으로 무너져 내린 일상, 헌재의 탄핵 선고를 앞둔 긴장감, 탄핵 이후에도 체포되지 않는 권력자와 이를 지지하거나 방조하는 세력들에 대한 분노 등은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의 마음이었다.

저자는 “광장에서 아무도 국가 폭력으로 다치지 않아 기쁘다는 말을 듣고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적었다.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상황이 이렇게 많은 이들의 마음에 뻔한 가능성으로 존재했던 그 시간 자체가, 그런 시간이 있는 현실 그 자체가 두렵고 아프다”는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더불어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 무엇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엇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헤아려 보게 된다.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서로를 이해하며 연대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집회 초기와 달리 광장에 앉은 사람들은 점차 누군가가 느낄 부당과 불편, 불쾌를 인정하고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게 시작했다. 남태령에서 밤을 지새운 사람들과 그들에게 난방버스와 음식을 보낸 마음들이 연결돼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고, “이처럼 경이로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 된다.

“남의 고통을 돌아보고, 서로 돌볼줄 아는 마음이 이처럼 강렬한 정치적 국면에 광장으로 나왔다가 다른 광장으로 번 져갔”고 이 광경을 모두 목격하고 기록한 저자는 말한다. “놀라운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그리고 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놀랍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저자는 독서를 하며 마음을 추스린다. 내용이며 만듦새며 모든 게 너무 아름다워서 심장이 뛰고 아껴 읽고 싶은 다이애나 베리스퍼드 크로거의 ‘세계숲’, 읽다 눈물을 터트린 배리 로페즈의 ‘호라이즌’, 아야드 악타르의 ‘홈랜드 엘레지’ 등이 버거운 일상에서 숨통을 틔워준 리스트다.

“노동자, 농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온갖 시민,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정체성으로 어떤 부침을 겪고 있든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 폭력에 관통당한 경험으로, 그 고통으로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감을 잃지 않는다면, 잊지 않는 다면 괜찮지 않을까.”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이 국면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 여러분과 동시대를 살아 다행이었고, 영광이었습니다. 다른 날 다른 때 우리가 또 서로를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라고 썼다. <창비·1만 4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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