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읽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하는 것이다
듣기의 철학-정경영 외 지음
2025년 07월 11일(금) 00:00
우리는 매일매일 다양한 소리를 듣고 있다. 익숙한 소리도 있고, 낯선 소리도 있다. 어떤 이는 특정한 소리에 반응을 하고 또 어떤 이는 무감각하다. 사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제각기 반응을 한다.

자크 아탈리는 “세상은 읽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하는 것이다”고 했다. 우리는 활자 문화, 다시 말해 무언가 읽는 것에 익숙하다. 주도적으로 텍스트를 읽고 그것의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에 익숙하다.

그러나 소리에 대해서는 자신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경우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청취는 단순히 듣기를 넘어 사유가 확장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이후의 상황이나 행동 전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해와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오해를 낳기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듣기를 매개로 한 ‘듣기의 철학’은 듣는 것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는 무엇을 듣고, 듣지 않는가’라는 부제처럼 인간은 선택적, 자의적 판단에 따라 특정한 소리만을 취사 선택해 듣는다.

음악학자인 정경영 한양대 작곡과 교수를 비롯해 김경화 한양대 음악연구소 연구부교수 등 모두 7명의 전문가가 저자로 참여했다. ‘소리’와 ‘듣기’를 모티브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젠더, 권력, 환경을 아우르는 통찰을 제시한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모든 소리의 의미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발생, 구성, 소통, 수용된다’는 것이다. 또한 젠더에 따라 소리를 듣는 것과 방식도 상이하다고 본다.

일례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천국제공항을 걸으며 했던 실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수 여학생들은 ‘구두 굽이 부딪히는’ 소리를 꼽은 반면 남학생들은 전혀 무슨 소리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관심의 차이, 익숙하지 않은 것의 차이가 낳은 현상이다.

책에는 20세기 이후 소음이 예술 재료로 쓰이게 된 내용도 다루고 있다. ‘4분 33초’ 침묵을 매개로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존 케이지의 사례 등도 흥미롭다. <곰출판·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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