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 아이들 열정 한 컷…스크린에 피어난 작은 학교 이야기
화순 청풍초 학생들 장편영화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 도전
영화 제작 자체가 아이들 성장 기회
마을·가족·친구 소중함 되새겨
김대중 교육감·김효관 교장 출연
이달 말 촬영 종료…시사회 예정
12월 ‘작은학교 영화·영상제’ 출품
영화 제작 자체가 아이들 성장 기회
마을·가족·친구 소중함 되새겨
김대중 교육감·김효관 교장 출연
이달 말 촬영 종료…시사회 예정
12월 ‘작은학교 영화·영상제’ 출품
![]() 화순 청풍초 학생들이 7일 화순군 청풍면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직접 제작하는 영화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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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카메라, 액션!
뜨거운 여름 햇살을 가려주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투닥거리며 장난치던 아이들이 감독의 사인에 자세를 바로 한다. 눈빛을 반짝이며 한 줄씩 대사를 내뱉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예슬이 할머니가 실종됐대.” “역사탐방은 어떻게 되는 거야?” “꽝이지. 꽝. 꽝. 꽝”
여느 영화 촬영 현장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 작가, 스태프까지 모두 초등학생이라는 사실이다.
화순군 청풍면의 작은 학교, 청풍초등학교 전교생 23명이 영화 제작에 나섰다.
영화의 제목은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 학생들이 수업과 교육과정 속에서 학교와 마을의 이야기를 직접 영상으로 풀어내는 ‘영상으로 담아내는 작은학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전남도교육청이 특색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기자는 7일 오전 9시 학생들의 촬영 현장을 찾았다. 학교는 물론 버스정류장과 논밭,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까지 곳곳이 무대다.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서툴지만 진지하게 연기를 이어갔다.
“감독님, 대사를 이렇게 말해도 돼요?”, “뒷모습만 나와도 괜찮아요? 제가 이렇게 돌면 어때요?” 폭염에 땀이 줄줄 흘러도, 아이들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아이들이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 그리고 마을의 기억이다. 작품 속에서 아이들은 화순탄광을 탐방하는 ‘탐방원정대’로 등장한다. 대장인 예슬이는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돌보느라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친구들과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할머니의 실종을 계기로 친구들은 예슬이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고, 모두가 ‘대장’이자 ‘대원’이 되어 함께 탄광을 탐방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추모공원에서 희생된 광부들을 기리는 음악회를 열며 마음을 모은다.
마을의 역사와 가족, 친구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이 성장 드라마는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영화 제작 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성장 기회가 되고 있다.
주인공을 맡은 3학년 문예슬 양은 “날씨는 더워도 주인공이니까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마을 이야기라 더 재밌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언니인 4학년 예은 양도 함께 촬영에 참여 중이다. “지난해에는 ‘폐교’, ‘슬픔바이러스’ 같은 단편도 찍었어요. 찍을 때는 힘들었지만 완성된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즐거웠어요. 이번엔 야외 촬영도 많고, 장편이라 더 기대돼요”라고 말했다.
이번 장편영화는 지난해 청풍초 아이들이 제작한 단편에서 시작됐다. 당시 영화를 함께 본 김대중 전남도교육감은 이번 작품에 특별 출연을 자청해, 지휘봉을 든 ‘음악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김효관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도 조연으로 참여해 촬영 현장을 함께 꾸리고 있다.
3학년 담임 박선하 교사는 “촬영 역시 교육과정의 일부인데도 책상에 앉아서 하는 수업과는 다르게 아이들이 훨씬 즐겁고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며 “더러 아이들이 집중을 오래 못 해 통제가 어려운 면도 있지만, 작은학교라는 특성을 살려 가능한 살아있는 교육이 되게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영화의 큰 틀을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역할은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2018) 등을 만든 화순 출신 박기복 감독이 맡았다. 박 감독은 “아이들이 자신의 마을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며 “화순탄광은 이 지역 역사의 상징인데다 아이들 시선으로 풀어낸 터라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예술은 지역 정체성을 담아내는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라며 “아이들의 이 같은 문화예술 경험은 교육적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화순에서 K-컬처의 미래를 이끌 명배우가 자라나길 기대해본다”고 전했다.
한편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는 7월 말 촬영을 마친 뒤, 학교와 화순군에서 시사회를 연다. 이후 12월 전남도교육청이 주최하는 ‘작은학교 영화·영상제’에 출품될 예정이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사진= 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뜨거운 여름 햇살을 가려주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투닥거리며 장난치던 아이들이 감독의 사인에 자세를 바로 한다. 눈빛을 반짝이며 한 줄씩 대사를 내뱉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예슬이 할머니가 실종됐대.” “역사탐방은 어떻게 되는 거야?” “꽝이지. 꽝. 꽝. 꽝”
화순군 청풍면의 작은 학교, 청풍초등학교 전교생 23명이 영화 제작에 나섰다.
영화의 제목은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 학생들이 수업과 교육과정 속에서 학교와 마을의 이야기를 직접 영상으로 풀어내는 ‘영상으로 담아내는 작은학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전남도교육청이 특색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기자는 7일 오전 9시 학생들의 촬영 현장을 찾았다. 학교는 물론 버스정류장과 논밭,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까지 곳곳이 무대다.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서툴지만 진지하게 연기를 이어갔다.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웃돌아 폭염경보가 발효됐던 7일 화순군 청풍면 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청풍초 학생들이 영화 촬영을 하고 있다. ‘영상으로 담아내는 작은학교’ 프로젝트의 하나로 학생들이 배우·감독·스태프 등의 역할을 맡았다. |
마을의 역사와 가족, 친구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이 성장 드라마는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영화 제작 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성장 기회가 되고 있다.
주인공을 맡은 3학년 문예슬 양은 “날씨는 더워도 주인공이니까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마을 이야기라 더 재밌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언니인 4학년 예은 양도 함께 촬영에 참여 중이다. “지난해에는 ‘폐교’, ‘슬픔바이러스’ 같은 단편도 찍었어요. 찍을 때는 힘들었지만 완성된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즐거웠어요. 이번엔 야외 촬영도 많고, 장편이라 더 기대돼요”라고 말했다.
이번 장편영화는 지난해 청풍초 아이들이 제작한 단편에서 시작됐다. 당시 영화를 함께 본 김대중 전남도교육감은 이번 작품에 특별 출연을 자청해, 지휘봉을 든 ‘음악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김효관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도 조연으로 참여해 촬영 현장을 함께 꾸리고 있다.
3학년 담임 박선하 교사는 “촬영 역시 교육과정의 일부인데도 책상에 앉아서 하는 수업과는 다르게 아이들이 훨씬 즐겁고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며 “더러 아이들이 집중을 오래 못 해 통제가 어려운 면도 있지만, 작은학교라는 특성을 살려 가능한 살아있는 교육이 되게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영화의 큰 틀을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역할은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2018) 등을 만든 화순 출신 박기복 감독이 맡았다. 박 감독은 “아이들이 자신의 마을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며 “화순탄광은 이 지역 역사의 상징인데다 아이들 시선으로 풀어낸 터라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예술은 지역 정체성을 담아내는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라며 “아이들의 이 같은 문화예술 경험은 교육적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화순에서 K-컬처의 미래를 이끌 명배우가 자라나길 기대해본다”고 전했다.
한편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는 7월 말 촬영을 마친 뒤, 학교와 화순군에서 시사회를 연다. 이후 12월 전남도교육청이 주최하는 ‘작은학교 영화·영상제’에 출품될 예정이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사진= 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