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영화 속 그곳으로…전남 로케이션지 시간여행
[굿모닝예향-남도투어]
우리나라 전통 원림 원형 간직한 ‘백운동’
여름엔 울창한 녹음과 정원 아름다움 가득
1930년대 지어진 일본식 한옥 ‘목서원’
서양의 낭만·전통 미감 갖춘 독특한 구조
목포 시화골목의 시작점인 ‘연희네슈퍼’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재탄생한 ‘장흥교도소’
2025년 07월 07일(월) 18:55
영화 ‘1987’ 촬영지로 명소가 된 목포 서산동 시화골목 연희네 슈퍼.
강진 백운동 원림과 나주 영산포 적산가옥, 목포 서산동 시화골목, 옛 장흥교도소…. 조선시대에서 현대까지 드라마와 영화의 흔적이 머문 전남의 감성 로케이션지를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난다. 촬영 당시의 모습이 남아 영화의 한 장면으로 들어간 듯 착각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시대: 강진 백운동 원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강진군 성전면의 깊은 계곡. 햇빛을 차단시켜주는 숲으로 들어서니 여름이 맞나 싶게 바람의 온도가 달라진다. 도시를 벗어나 조선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길. 백운동정원이 조금씩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다섯 채로 이뤄진 초가와 기와집, 곡선을 따라 놓인 돌담, 계곡을 건너는 다리까지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도 여전히 살아있는 정원의 모습이다.

‘백운동 정원’은 조선 중기 처사 이담로(1627~1701)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지은 원림(園林)으로, 우리나라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별서정원이다.

정원은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섞인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을 이룬다. 현재의 건물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백운동 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고, 이를 근거로 전통별서의 모습을 재현했다고 전해온다.

백운동 정원이 일반인들에게 다시 주목받은 건 2022년 방영된 tvN 판타지 사극 ‘환혼’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다. 역사에도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은 대호국을 배경으로, 영혼이 뒤바뀌는 허구의 세계관 속에서 주인공들이 무공을 수련하고 스승과 마주하는 공간으로 백운동정원이 등장했다.

‘환혼’의 세계를 떠올리며 다시 찾은 백운동 정원. 드라마처럼 극적인 순간은 없지만 정자에 앉아 물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느새 마음속이 비워지는 느낌이다. 정원 옆, 하늘을 가린 울창한 대나무 숲길은 드라마 속 주인공 무덕이와 장욱이 걸었던 장면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1990년대 영화 ‘장군의 아들’ 주요 촬영지였던 나주 영산포 ‘일본인 지주가옥’.
◇일제강점기: 나주 영산포 적산가옥, 목서원= 나주 영산포의 한적한 골목길을 걷다 발견한 독특한 외형의 건물 한 채. 외벽에 걸린 ‘타오르는강 문학관’ 플래카드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문학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일본인 지주가옥’이라 부른다.

영산포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의 쌀 수탈과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다. 1900년대 초반부터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식 목재 가옥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여러 채의 가옥이 남아있다.

지역민들이 ‘일본인 지주가옥’이라고 부르는 주택은 일제 시절 영산포에서 가장 큰 지주였던 쿠로즈미 이타로가 살던 집이다. 지금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은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 구조를 따른다. 가옥 바닥이 지면보다 높고 창호지가 있는 미닫이문, 기와와 서까래, 목조 골조, 기다란 복도까지 전체적인 구조가 일본 전통 주택을 보여준다.

이 곳은 1990년대 한국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장군의 아들’ 주요 촬영지이기도 하다. 영화를 촬영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이곳에 들르면 여전히 장면이 재생되는 듯하다.

적산가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특별한 공간이 있다. 복합문화공간 ‘3917마중’,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한 ‘목서원’이다. JTBC 드라마 ‘알고 있지만’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극중 미대생들이 MT를 떠나 들렀던 한적한 공간, 나무와 벽돌, 햇살과 빈 의자가 어우러졌던 장면 속 배경이 목서원이다.

목서원은 1930년대 지어진 일본식 한옥이다. 책상이 놓인 응접실은 서양식, 나무 마루는 일본식, 뒤뜰은 전형적인 한옥 마당으로 서양의 낭만과 일본의 정갈함, 한국 전통의 미감이 혼재된 독특한 구조를 갖는다. 복합문화공간으로의 목서원은 현재 전시, 낭독, 문학 강연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tvN 판타지 사극 ‘환혼’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주목받고 있는 백운동 원림.
◇1970~80년대: 목포 서산동 시화골목= 목포의 명산 유달산 자락 아래 비탈진 골목.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에 오래된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깨끗이 페인트칠 된 담벼락에는 손글씨로 쓰여진 시와 벽화가 뒤섞여 있다. 서산동 시화골목의 풍경이다.

서산동 시화골목은 ‘연희네슈퍼’에서 시작된다. 연희네슈퍼는 2017년 개봉한 영화 ‘1987’ 극중 연희네 집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싸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조용했던 마을은 영화가 개봉된 이후로 목포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됐다. 1987년의 시간을 품고 있지만 2025년에도 마주할 수 있는 공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기억의 공간, 시간의 공간이기도 하다.

서산동 시화골목은 직접 걸어봐야 알 수 있는 골목이다. 더운 날씨임에도 골목길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얗게 칠한 벽면 위에는 마을 할머니들이 지은 시가 쓰여 있고 노란색 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2013년 작은 마을 축제에서 시작된 시화 프로젝트가 지금은 80여 점의 시와 벽화가 어우러진 시화골목으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영화 팬들 뿐 아니라 골목 감성을 찾는 여행자들에게도 소문난 산책 코스로 기억되고 있다.

영화 ‘프리즌’ 올 로케이션지로 화제를 모은 빠삐용zip 옛 장흥교도소. 1950년대부터 실제로 운영되던 국가 교정시설이다.
◇현대: 빠삐용zip 옛 장흥교도소= 악명 높은 성안교도소 담장 안에 죄수복을 입은 사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닳은 신발에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철문. 잠시 후, 또 다른 죄수들을 태운 버스 한 대가 정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선다. 밤이 되자, 감시탑의 조명이 천천히 회전하고 봉고차 한 대가 조용히 철문을 빠져 나간다…

2017년 개봉한 영화 ‘프리즌’의 전반부 장면이다. ‘프리즌’은 교도소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음모를 그린 범죄 액션 영화다. 배경이 된 장소는 옛 장흥교도소다.

무대 자체가 교도소다 보니 촬영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이뤄졌다. 수감되는 장면,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비밀 거래, 감옥 내 탈출 루트 등 모든 긴장감의 배경이 옛 장흥교도소다.

옛 장흥교도소는 1950년대부터 실제로 운영되던 국가 교정시설이다. 2000년대 초 폐쇄된 뒤 수년간 방치됐다가 현재는 영화·드라마 촬영지, 체험 공간, 문화 콘텐츠 장소로 재탄생했다.

수백편의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옛 장흥교도소가 각광받는 이유는 단순히 폐 공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간 안에 축적되어 있는 시간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다. 도색되지 않은 철문, 지워지지 않은 교도소 벽면의 문구, 감시탑의 경사계단, 복도를 지날 때 들어오는 자연 채광까지 훌륭한 배경이 되고 있다.

현재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탄생지이자 여행자와 창작자들이 찾는 ‘이야기의 무대’가 되고 있다. 새롭게 갖게 된 이름은 ‘빠삐용 zip’.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영화 ‘빠삐용’과 파일 압축 확장자 zip의 합성어로,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의 ‘집’까지 확장하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마무리 작업을 마치고 7월말 장흥 물축제 기간에 맞춰 공식 개장될 빠삐용zip의 변화가 기대된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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