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장밭에 간다” 일상에 박힌 상처 여전…‘산 역사’ 보존안 마련 시급
망운·현경면, 송정리·평산리 일대
격납고 9기 중 2기 도로 개설 등으로 소실
남은 곳도 철근 훼손, 토사·수풀에 막혀
토지 소유주 반대에 문화재 지정 추진 무산
후손 위한 역사 교육·관광 자원 방안 절실
2025년 07월 07일(월) 08:50
무안군 망운면 목동리의 한 고구마 밭 옆에 있는 격납고의 뒷면이 토사와 수풀로 막혀있다.
“어디 밭 가냐고 물어보면 다들 ‘비행장 밭에 간다’ 했어요. 그 말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지요.”

무안군 현경면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의 말이다. 이 지역 농민들 사이에서 ‘비행장 밭’이라는 표현은 낯설지 않다. 논밭 이름인 듯 쓰이는 이 단어는 사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만든 군용 비행장인 ‘무안 비행장’의 흔적에서 비롯됐다. 8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역 주민들의 언어와 일상에는 여전히 전쟁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실제로 무안군 망운면과 현경면, 송정리·평산리 일대 농가 곳곳에는 일제 말기 일본군이 조성한 비행기 격납고들이 흩어져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은 밭 한가운데, 민가 등에 덩그러니 남겨져 방치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무안군에 따르면 현재 남아 있는 무안 비행장 관련 격납고는 모두 5기다. 구체적으로 현경면 송정리 319-40, 송정리 343-26, 평산리 203-1, 평산리 산 204, 망운면 목동리 262-2번지 등이다.

무안군은 이들 유적에 대해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해 왔지만, 토지 소유주들의 반대로 인해 아직 지정 절차는 진행되지 못한 상태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2023년 12월에 지정 용역은 완료됐으나 대부분 부정적 의견을 보여 협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입구의 천장 테두리 부분은 훼손돼 철골이 드러나있는 모습이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격납고는 9기였지만 이 중 1기는 도로 개설로, 또 다른 1기는 토지 소유주의 자발적 철거로 인해 소실됐다. 현재 남아 있는 격납고 대부분은 전쟁 말기인 1943년부터 1945년 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당시 일본군이 무안 지역을 남부 방어선의 거점으로 삼고 만든 전시 군사시설이다.

이들 격납고는 인근 해안에서 채취한 자갈과 모래, 조개껍데기 등을 철근콘크리트에 혼합해 시공된 것이 특징이다. 격납고 외벽 곳곳에는 지금도 조개껍질 자국이 선명히 박혀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현경면 송정리의 한 민가 뒤편에 남은 격납고는 천장에 나무 뿌리가 뚫고 자라나 비 오는 날이면 물이 새며 붕괴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후면에는 토지 소유주가 창고로 쓰기 위해 덧댄 문과 계단이 설치돼있는 모습이다.

무안군 현경면 평산리 유수정마을 인근에 있는 격납고의 입구는 비닐로 막혀있다.
평산리 유수정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우측 산길로 들어가면 또 다른 격납고를 발견할 수 있다. 해당 구조물은 현재 비닐로 덮여 있었고, 내부 틈 사이로는 잡풀이 자라나 있었다. 격납고 천장에는 최근에 설치된 듯 보이는 굴뚝처럼 생긴 환기구가 뚫려 있었고, 구조물 내부엔 거미줄이 가득했다.

망운면 목동리의 고구마 밭 옆에 위치한 격납고는 더욱 훼손이 심했다. 입구 천장의 테두리 부분은 절반가량 훼손돼 철근이 드러나 있었고, 후면은 토사와 수풀이 쌓여 완전히 막혀 있었다.

송정리의 한 주민은 “이 시설들을 어떻게 보존하거나 활용할지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없어 안타깝다”며 “후손들에게 역사교육과 관광 자원으로도 의미가 있는 만큼, 하루빨리 체계적인 보존 방안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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