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박성천 문화부장
2025년 06월 22일(일) 22:00
일반적으로 수필은 오랫동안 문학의 비주류로 인식돼왔다. 시나 소설, 희곡에 비해 허구적 특성이 많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진솔함이 수필의 매력이자 독자와의 소통을 잇는 요인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배웠던 수필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피천득의 ‘인연’이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 만났던 일본인 소녀와의 만남과 추억을 담담하면서도 회고조로 풀어낸 수필이다. 짧은 만남 이후 우연한 재회가 있었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다시 엇갈린다. 작품이 감동적이었던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저마다 삶 속에 드리워져 있을 법한 ‘인연’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도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이다.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 “잘 익은 개암의 냄새”라는 표현은 모더니즘 문학을 추구했던 이효석 문학의 일면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일제시대 대다수 서민들은 궁핍한 삶을 사는 데 반해 작품이 다소 귀족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으로 유명한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도 인상적이었다. 형편은 어렵지만 사랑을 잃지 않은 부부의 이야기는 진정한 행복을 생각하게 했다.

19일과 20일 이틀간 한국수필가협회가 주최한 전국 심포지엄이 광주에서 열렸다. 한국수필가협회는 1971년 창립한 수필문단의 주춧돌 같은 단체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품격 높은 문학 수필의 진수’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생성형 인공지능과 저작권’에 대한 토론, 수필극 공연, 수필문학상 시상식 등이 진행됐다. 행사 이후에는 무등산 일대 시가문화권 기행을 통해 남도 자연에 깃든 문학의 진수를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다.

전국 수필가 대회가 지역에서 개최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노벨문학상을 배출한 도시, 광주의 저력을 전국의 문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문예이론가인 루카치는 수필에 대해 “좀처럼 포착하기 어려운 인간 영혼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 잡은 마음의 미세한 풍경을 그리는 양식”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장마와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올 여름,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줄 수필 한 편 정도는 꼭 읽기를 권한다. / 박성천 문화부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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