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호의 키워드로 읽는 광주·전남 미술사] 우직한 남도인의 미소 … 세상살이 보듬는 ‘마을 수호신’
[(3) 포용 자애, 남도인의 초상-석장승 벅수]
호남지역, 정적이고 공동체 의식 생활화
민불·굿 등 생활 속 복 염원하는 문화 발달
화순 민불·남평 선돌, 민간신앙의 기도처
나주 운흥사 돌벅수, 인자한 촌로의 모습
나주 불회사 노부부 돌벅수 등 ‘포용의 미학’
동그런 눈·주먹코…정감 있는 토속 정서
2025년 06월 17일(화) 20:00
나주 불회사 입구 돌벅수 상원당장군. <조인호 제공>
이 땅의 토박이 무지랭이들이 현세 삶의 주체가 되고 그들 사이 공유문화가 민속으로 크게 흥성했던 것은 조선 후기 17~18세기 무렵이다. 특히 영남, 영동 지역과 한강 서북부 등 조선 후기 상업활동이나 사람들의 들고 남이 활발했던 지역에서는 동적이고 연희성이 강한 산대, 오광대, 별신굿 같은 탈놀이가 민속문화의 중심을 이루었다면, 정적이고 공동체 의식이 생활화된 호남지역 농본사회에서는 장승 벅수, 민불, 솟대, 굿 등 현세 삶과 관련한 기도처나 표식으로서 벽사기복 문화가 두드러진다. 심지어 본래 외래종교인 불교문화마저도 오랜 세월 토착화되면서 민속신앙과 결합된 조성물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도의 옛 토박이 문화를 담고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산들은 곳곳에 널려 있다. 이 가운데 광주 가까이에서 짧은 시간 남도문화의 진면모를 접하고자 하는 분들께 종종 권하는 석조유물 답사코스가 있다. 화순읍 벽나리 민불, 운주사 천불천탑, 나주 불회사 입구 벅수, 운흥사지 입구 벅수, 남평 동사리 선돌을 잇는 코스다. 장소마다 머무는 시간 따라 달라지겠지만 원을 그리듯 한 바퀴 도는데 자동차로 세 시간쯤 소요된다. 이 가운데 운주사 석불군은 앞서 언급했었고, 다른 곳들을 찾아가 본다.

◇민불과 선돌

먼저, 화순역 근처 벽나리 민불은 들 가운데 두 그루 큰 나무 그늘에 선돌처럼 서 있는데, 사각기둥처럼 다듬어진 3.5m 높이 돌의 남쪽 면에 얇은 부조로 불상이 새겨져 있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온화하고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옷깃을 여민 아미타 수인 비슷한 손모양이다. 거친 자연석에 부처의 상호나 수인의 상징적 모양만 대략 쪼아놓는 다른 민불들에 비하면 키도 크고 살짝 볼록한 얼굴과 선각인 몸체의 새김이 꽤 정성을 들인 조성물이다.

그에 비해 나주 남평 동사리 선돌(동구몰)은 아무 손질 없는 높이 2.3m 자연석인데, 정월 초사흘 당산제 때 짚으로 삼단 벙거지를 씌워 놓았다. 옛 남평현의 동문 쪽이면서 바로 옆에 드들강이 흐르고 있어 할머니 당산나무와 더불어 마을을 지키는 비보 벽사의 역할이자 기자신앙의 기도처였던 것 같다. 묵직한 포탄처럼 당당히 곧추선 모양이 건장한 기운을 내뿜고 있어 충분히 그래 보인다. 순창 팔복 산동리 창덕리의 힘줄까지 울퉁불퉁한 남근석에 비하면 소박 우직하지만, 남도 도처의 크고 작은 자연석 선돌들과 비교하면 잘생긴 귀물에 속한다.

◇동네 어르신 같은 운흥사 입구 돌벅수

대개 어떤 새김 없이 천연의 긴 돌을 세워놓는 선돌은 특별한 표지석이나 기복신앙물일 수는 있어도 적극적인 의미의 조형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에 비해 장승 벅수는 인물 형상이 뚜렷하고 몸체에 소임을 새겨 놓는 경우들이 많아 주목할만한 민속조형물이다. 대부분 조성하는 주체나 조각을 새기는 이들이 인근 마을사람들이고, 그래서 민초들의 감성과 염원이 배어든 유형문화재인 것이다.

제작 시기가 확실하면서도 이른 예인 나주 운흥사 입구 돌벅수 한 쌍은 특별한 멋이 있다. 나주호 옆 다도면 소재지에서 4km쯤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암정리 벅수거리 길 양쪽에 마주 선 돌벅수를 만나게 된다. 조선 후기인 1719년(康熙 58년) 조성 연도까지 새겨 놓아 중요한 국가민속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영락없이 동네 생원 영감님 같은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은 꾹 눌러쓴 샌님 갓에 안경 쓴 것처럼 동그란 눈과 합죽이 입, 뭉툭한 코, 웃는 입꼬리에 밀려 잔뜩 부풀어 오른 양 볼이 미소를 잔뜩 머금으면서도 역할이 길목 지킴이인지라 무섭게 보이도록 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거기다 가슴께 위로 흩날리는 두 갈래의 턱수염이 근엄해 보이기도 한다.

그 앞의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은 그런 영감님과 늘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진 듯 한껏 웃음기를 머금은 정겨운 할멈 모습이다. 바깥양반과 마찬가지로 둥그런 왕방울 눈에 합죽이 입의 뻐드렁니를 삐죽 내밀고 앞니는 훵하니 빠진 채 광대뼈 승천으로 콧잔등이 골지게 웃고 있다. 살다 보면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키만 살짝 작을 뿐 영감님 얼굴과 이목구비가 거의 같은 표정이다. 심성 착한 노부부가 절 입구를 지키는 소임을 맡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해 보이는, 순박한 시골 촌로들의 모습이다.

나주 운흥사 입구 돌벅수 상원주장군. <조인호 제공>
◇남도인의 미소, 불회사 입구 돌벅수

이곳 운흥사 벅수에서 운주사 방향으로 8km쯤 불회사 입구에 또 다른 벅수 한 쌍이 있다. 정겨움과 자애로움으로 보면 운흥사 벅수 못지않다. 산자락 아래 구불구불 절길을 따라 들어가면 전나무숲 그늘에 마을 어르신 같은 한 쌍의 노부부 돌벅수가 길 양쪽에서 맞이한다. 조성된 시기는 거리도 가깝고 비슷한 조각법을 보이는 운흥사 것과 비슷한 18세기 초로 보는데, 마찬가지로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오른쪽 영감님 벅수는 ‘상원당장군(上元唐將軍)이라 새겨놨는데, 대개 남성상에 ‘주장군’을 붙이는 것과는 다르면서 ‘상원’과 ‘하원’ 글자를 수정했던 흔적도 있어 원래 반대로 새겼던 것 같다. 어쨌거나 납작한 상투머리에 툭 튀어나온 이마, 왕방울만한 눈, 애써 인상 써 보이느라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입가에는 송곳니까지 삐져나와 있다. 하지만 아무리 무섭게 보이려 해도 고사리잎처럼 말아 올려진 콧볼이나, 정갈스럽게 땋아 옆으로 흩날리는 턱수염은 해학적이기도 해서 억지 무서움 표정이 정겹기도 하다.

이에 마주 보고 선 ‘주장군(周將軍)’은 그저 맘씨 좋은 시골 외할머니상이다. 둥그스름 넉넉한 볼살의 얼굴에 둥그런 눈과 그 위로 듬성듬성 치켜올린 속눈썹들, 미간을 여러 겹 찌푸려 인상 써 보이려고는 하지만 합죽이 입 주위 가득한 잔주름, 줄줄이 당겨진 목주름으로 웃고 있는 인자한 모습이다. 할아버지 2.3m에 비해 더 작은 1.7m 키도 덜 위압적이고 친근해 보여 절을 기웃거리는 그 어떤 악귀나 사악한 것이라도 정으로 감복시키고 말 남도인의 미소 그 자체다. 숲길 안쪽 불회사 대웅전(보물 1310호)의 허리를 구부려 자애롭게 내려다보는 건칠비로자나불좌상(보물 1545호)과 안팎으로 이어지는 포용의 미감이다.

나주 불회사 길목 양쪽에 마주 선 돌벅수 한쌍.
◇배척 겁박이 아닌 포용과 자애

이 밖에도 사람 사는 곳이면 남도 곳곳마다 장승이나 벅수, 민불이 세워져 있다. 둥그런 눈과 주먹코가 정겨우면서도 ‘상원주장군’과 ‘하원당장군’이 바뀌어 새겨진 보성 해평리 마을 초입의 돌벅수, 살짝 기울어진 돌에 왕방울 눈과 주먹코를 쪼아 만든 무안 몽탄 총지사지 입구 돌장승, 불회사 벅수를 닮은 법천사 입구 돌장승 등등 대부분 토속미감이 담긴 정감 있는 모습들이다. 그런가 하면 영암 금정 쌍계사지 돌장승처럼 제주 하루방 비슷한 두상도 있고, 신안 내월리 돌장승처럼 본래 지킴이 역할에 맞게 무인상이거나, 담양 남면, 담양읍 비석거리, 창평 오리천, 무안 청계중학교 돌장승들처럼 문인상도 있다.

이러한 토속 정서가 배어나는 전통 벅수 장승들은 위압적으로 겁을 주어 쫒아내려는 타지나 일본 중국 등의 수호신장상들과 다른 모습들이고, 인체의 사실적 재현과 조형성을 우선으로 하는 서구식 근·현대기 조각과 비교해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더욱이 조선말 이후로는 우락부락 과장된 인상으로 나무를 깎아 세운 목장승들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조선 후기 민속 조각에서 우러나는 고유한 멋과 정감, 울퉁불퉁 과장되면서도 정겨운 얼굴 생김, 투박하지만 진솔한 농투사니 정서가 배인 거친 표현, 현실 달관에서 우러나오는 낙천적 해학미는 수호신장이면서 세상살이를 모두 싸안아 보듬어주는 정신적 의지처이기도 하다.

특히, 나주 운흥사나 불회사 입구 벅수처럼 길목 지킴이라 해도 힘으로 제압해 삿된 것들을 내치기보다는 오히려 너른 포용력으로 다독거려 감화되게 만드는 여유와 정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마치 동네 어르신 같은 이 땅 민초들의 초상이자 남도인의 미소를 머금은 정감과 친화력, 토박이 감성으로 남도 공동체 사회 어울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친근한 분들이다.

조인호(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한국미술사 전공.

▲ (재)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정책기획실장 역임

▲‘남도미술의 숨결’, ‘광주 현대미술의 현장’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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