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건·공간이 연결된 역사의 현장을 경험하다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 신병주 지음
2025년 05월 22일(목) 20:30
흑산도 사촌서실. 사촌서실은 1801년(순조1) 산유박해로 인해 흑산도로 유배를 간 손암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한 흑산도 사리마을에 있는 유배지다.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아홉 능 ‘동구릉’


지난 2019년 우리나라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장성 필암서원을 비롯해 정읍 무성서원,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안동 병산서원, 함양 남계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이 해당한다.

세계유산은 국가문화재를 넘어 세계인의 유산, 즉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며,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정읍 무성서원은 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이르는 변혁의 시대를 살았던 최치원을 배향한 태산사에 기원을 둔다. 최치원은 당시 지금의 태산(지금의 태인) 태수로 부임했을 때 선정을 베풀었다. 서원의 건립은 조선 중기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워졌으며, 숙종 22년(1696년) 왕이 무성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됐다.

또한 무성서원은 구한말 항일 의병의 활동 거점지이기도 하다. 병오년 최익현과 임병찬이 의병 활동을 전개했는데 ‘병오창의기적비’는 서원이 강학 외에도 시대 상황에 의연히 맞섰던 공간임을 보여준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역사적 공간을 공부한다는 의미다. 역사가 전개되고 이뤄지는 곳은 특정 공간을 통해서다. 현장 답사는 역사적 의미를 가장 쉬우면서도 임팩트있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은 현장 답사의 내용과 당시의 느낌 등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신병주 교수가 저자로 그동안 ‘역사저널 그날’, ‘차이나는 클라스’ 등 프로그램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왔다. 건국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책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 ‘왕으로 산다는 것’, ‘우리 역사 속 전염병’ 등 우리 역사를 쉬우면서도 흥미롭게 풀어냈다.

흑산도 하면 떠오르는 것은 홍어와 ‘자산어보’ 그리고 정약전이다. 그렇다면 자산어보에도 홍어에 대한 기록이 등장할까. 정약전은 홍어의 생김새부터 효능, 식용 방법 등을 기술했다. 홍어의 원명이 분어이며 홍어는 속명이라고 적고 있다.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집필한 곳은 흑산도 사리마을의 사촌서실이다. 이곳은 사촌서당, 복성재(復性齋)로도 불리었다. 강진에 유배됐던 정약용은 형님과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사촌서실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내 형님 손암(정약전) 선생께서 머나먼 남녘 조금한 섬인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한 지 7년이다… 형님은 이미 초가집 두어칸을 짓고 사촌서실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조선 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당시 심사 과정에서 외국 위원들은 산림과 숲길에 매료됐다. 조선 왕릉 조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풍수지리와 근접성이었다. 명당이면서 서울에서 가까워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었다. 조선 왕릉이 많이 조성된 곳이 구리시의 동구릉이다. 태조의 무덤이 조성된 이후 왕과 왕비 무덤 8기가 이곳으로 오면서 “동쪽에 있는 9기의 능”이라는 뜻에서 그 같은 명칭이 붙여졌다.

영조의 원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쌍릉의 형태인데 영조 옆자리는 50년을 함께한 정성왕후가 아니다. 영조가 예순여섯에 결혼한 열다섯 살의 신부 정순왕후였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다.

저자는 서울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아차산을 꼽는다. 한강을 낀 아차산은 삼국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토 다툼이 치열했던 곳이다. ‘아차산 고구려 보루’ 유적은 고구려가 구축한 방어 진지다. 일반적으로 보루는 조망하기 좋은 곳에 구축된 방어 시설을 일컫는다. 대부분 고구려 유적지가 북한, 중국에 있는 데 반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아차산 보루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깊다. 1990년대 후반 발굴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홍련봉 1, 시루봉 보루 등이 발굴됐다.

한편 책에는 궁궐 속 치유 공간 내의원, 경복궁 안 도서관 집옥재, 정동의 러시아공관, 대한제국의 상징공간 환구단, 추사 김정희의 예산 고택, 강릉의 허난설헌 생가, 제주도 향파두리성 유적지 등에 대한 내용도 기술돼 있다. <매일경제신문사·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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