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필로 새긴 양심의 기록, 5·18 연극 ‘광천동 청년 용준씨’
극단 토박이, 23·24일 민들레소극장
2025년 05월 22일(목) 18:15
5·18 연극 ‘광천동 청년 용준씨’의 한 장면.<극단 토박이 제공>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1980년 5월 27일, 박용준 열사는 자신의 마지막 밤 유서가 될지도 모르는 일기를 썼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이 소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며 깊은 울림을 받았다고 밝힌 바로 그 문장이기도 하다.

언론이 5·18 광주의 진실을 외면했을 때, 그 공백을 메운 것은 거리의 시민들과 이름 없는 손들이었다. 신군부의 폭압에 맞서 탄생한 저항언론 ‘투사회보’. 뾰족한 쇠필철로 수천 장의 투사회보를 필경한 것은 스물 다섯살의 고아 청년 박용준이었다.

극단 토박이가 연극 ‘광천동 청년 용준씨’를 23일(오후 7시 30분)과 24일(오후 3시) 광주 동구 민들레소극장에서 선보인다.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기획된 ‘오월 휴먼시리즈’의 일환으로, 지난해 초연 당시 묵직한 감동을 전한 작품이다. 연출은 박정운.

극은 1978년 들불야학 단합대회에서 시작한다. 고아로 자라며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박용준은 주변 도움으로 신협 교도원에 취직하는 등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에 계엄군이 진입하면서 모든 것이 뒤바뀐다.

계엄군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모습을 목격한 들불야학 동료들과 용준은 고립된 광주에서 ‘투사회보’ 제작을 시작한다. 철필 하나로 수천 장을 새겨내는 고된 작업. 손은 부어오르고 살갗은 벗겨졌지만, 그는 진실을 알리겠다는 신념 하나로 밤을 지새운다.

공연은 이 과정을 인형, 미니어처, 가면 등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해 구현한다. 민주시민회보(투사회보)를 10호까지 발간한 이들의 노력과 광주YWCA에서의 최후까지. 박용준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임해정 극단 토박이 대표는 “이번 공연이 박용준이 바라던 세상, 그리고 그 꿈을 함께한 광천동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을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며 “투사회보가 전하려 했던 숭고한 인간애의 가치를 관객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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