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색기술,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다- 정석희 전남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2025년 05월 12일(월) 00:00
2025년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역사적 변곡점 앞에 서 있다. 정치의 본질은 생존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거대한 문제는 단연 기후위기다.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문명은 지난 200여 년간 인류에 전례 없는 번영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지구의 생태 한계선을 무너뜨리고 있다. 세계 기후학자들이 경고하는 ‘지구한계선’ 아홉 개 중 여섯 개가 이미 초과되었고, 바다는 산성화되었으며, 육지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다.

이 와중에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지금까지의 과학기술은 무엇을 했는가?” 그 해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연 그 자체에 있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위기를 불렀다면, 자연에서 모방하고 배워야 할 때다. 이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이 바로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이다.

청색기술은 생물에서 영감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는 생물영감(Bioinspiration), 생명을 모방하는 생물모방(Biomimicry), 그리고 자연 중심의 기술 전환을 뜻하는 자연중심기술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한 친환경 기술이 아니다. 자연의 38억 년 진화가 만들어낸 최고의 생존 전략을, 인간의 기술과 통합하려는 지속가능 기술의 총체다.

NASA는 회전초를 본떠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화성 탐사 로봇을 만들었고, 일본의 의료기기는 모기의 주둥이를 모방해 무통 주사기를 개발했다. 연잎의 표면 구조는 자기정화 페인트로, 게코의 발바닥은 수직 표면을 기어오를 수 있는 로봇 기술로 구현됐다. 자연은 이미 기후위기 없는 기술을 실현해 왔다.

청색기술은 이런 자연의 원리를 첨단 기술로 전환하여 탄소 배출을 사전에 억제하고, 자원 소모를 최소화하며, 사회적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기술이다. 이는 더 이상 과학 저널의 지엽적 사례가 아니다. 국가 전략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녹색성장(Green Growth)'이라는 말을 신봉해왔다. 하지만 녹색기술은 본질적으로 사후처리적 대응 기술이다. 오염된 뒤 정화하고, 파괴된 뒤 복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에 반해 청색기술은 오염 자체를 일으키지 않는 기술이다. 예컨대 건축 외벽에 연잎 효과를 구현한 나노 소재를 적용하면, 추가 세정 없이도 외벽은 깨끗하게 유지된다. 이처럼 청색기술은 환경 비용을 줄이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며, 기술과 생태가 공존하는 '예방 중심'의 기술이다.

미국의 <프로젝트 드로다운>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에 효과적인 상위 25개 기술 중 60%인 15개가 청색기술에 해당된다. 이 통계는 청색기술이 기후위기 극복의 핵심 수단임을 보여준다.

청색기술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융합 지식의 총합이다. 생물학, 생태학, 나노기술, 재료공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건축학, 에너지공학이 모두 얽혀 있다. 이 모든 분야를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새로운 학제적 지평을 열 수 있는 공간은 바로 대학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대학은 연구소를 뒷받침하기에는 턱없이 취약하다. 정책과 행정의 제약이 너무 많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정치적 결단으로 '청색기술 특화 연구소'를 대학 내에 설립하는 일이다. 정치권에서 늘 말하는 미래산업, 과학기술 패권, 첨단 생태문명은 모두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을 통합할 수 있는 대학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국가 연구기관이 대학 안으로 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이는 선진 과학기술국가에서는 이미 매우 일반적인 구조이다. 대학은 청색기술을 통해 학문적 상상력과 지역 공동체를 연결할 수 있으며, 학생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민생기술 혁신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 국가가 되어야 한다. 이미 2010년 벨기에의 군터 파울리는 『청색경제』에서 100개의 자연중심 기술로 1억 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군터 파울리의 동화를 초등교육에 도입하고, 청색기술 교육을 정책화했다.

반면 우리는 2020년 국회에 발의된 '청색기술개발 촉진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했다. 지금이 기회다. 청색기술은 단순한 기후 기술이 아니라 '민생기술'이며, 산업구조 개편의 디딤돌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ABC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A: 인공지능 기반의 디지털 전환, B: 청색기술 중심의 생태적 전환, C: 문화기술을 통한 인본적 전환) 여기서 'B', 즉 청색기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디지털도, 문화도 자연과 공존할 때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 소장은 말한다.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그는 2012년 ‘청색기술’이라는 말을 창안했고, 지금도 2200명에게 생태기술 뉴스레터를 발송하며 민생기술 운동을 이끌고 있다. 그의 비전은 단순한 과학기술의 정당화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따뜻한 기술(Friendly Technology)에 대한 헌신이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필자를 포럼에 초대했고, 그것을 계기로 필자도 청색기술의 확산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경제, 정치, 환경 모두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청색기술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 생태적 전환, 기술 기반의 일자리 창출을 함께 이루는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국가 리더는 청색기술을 실현할 수 있는 연구소를 대학에 설립하고, 이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를 선도해야 한다. 38억에 걸쳐 익힌 자연을 배워,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직면한 위기를 돌파하는 기술을 만들어 가도록 하자.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746975600783793131
프린트 시간 : 2025년 05월 13일 06:14:10